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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0년 1월 12일 일요일

리뷰 : 진설 엽기의 함 제2장(2009/5/1, CALIGULA)

* 이 리뷰는 치명적인 스포일러를 포함하고 있습니다.



2009년에 리메이크된 <진설 엽기의 함 제2장>입니다.



개선된 부분중 가장 훌륭한 점은 시스템입니다.
캐릭터를 조작해서 이동하던 원작과 달리
이동하고 싶은 장소만을 선택해서 이동하면 됩니다.
이동하면 만날 수 있는 캐릭터 정보도 모두 표시됩니다.

또한, 맵 화면이나 BGM 등이 놀이동산의 신나는 분위기를 정말 잘 살려줍니다.



CG도 개선되었지만 딱히 칭찬할 부분은 아니라고 생각되는군요.
애초에 원작 게임의 CG가 너무나도 좋았습니다.



스토리를 살펴봅시다.
초반에는 큰 문제없이 놀이동산을 돌아다니며 미소녀 캐릭터들과
평범한 대화를 주고받는 것뿐입니다.

1편에서는 애초에 주인공이 연쇄 실종사건의 범인을 잡기 위해 백화점에 잠입한 것이었지만
2편의 주인공은 평화로운 놀이동산 경비일뿐이죠.


그냥 여러 캐릭터와 호감도를 높이는 대화나 주고 받는 나날이 계속 되던 중
5일째 되는 날, 드디어 사망사고가 발생합니다.



어디갔는지 하루종일 안 보이던 호빗 청소부 카지와라가
청소용구실에서 시체로 발견됩니다.
건방지게 주인공이 등장하기도 전에
진 히로인 후보인 마키코와 사귀고 있을 때부터 이미 예견된 일이었습니다.

카지와라의 사망은 단순사고로 처리됩니다.
테마파크 판타젠은 MAOS라는 최첨단 시스템으로 모든 설비가 관리되고 있습니다.
MAOS의 오작동으로 인해 카지와라는 청소용구실에 갇히게 되었고
또다른 오작동으로 인해 청소용구실의 이산화탄소 농도가 높아져 사망한 것입니다.


한 사람의 불행한 사망에도 불구하고 테마파크는 계속 운영됩니다.
그러나 불과 이틀만에 또다시 사망사고가 발생합니다.

경비를 서고 있던 주인공에게 세큐리티룸의 유카리가 통신을 보내옵니다.
퍼레이드 도중에 CCTV로 이상한 것을 발견했는데
자신이 본 것을 도저히 믿을 수 없으니 주인공이 대신 확인해 달라는 내용입니다.



퍼레이드 행렬 십자가에 마네킹 대신 기계 정비담당 카즈코가 매달려 있습니다.
주인공은 퍼레이드를 중지시키면 대소동이 일어날 것을 염려하여 곧바로 돕지 못합니다.
퍼레이드 행렬이 도착했을 때, 카즈코를 내려 심폐소생술을 시도하지만
결국 카즈코마저 사망하고 맙니다.

카즈코의 사망은 도저히 사고로 볼 수 없는 명백한 살인입니다.



살인사건의 유력한 용의자는 이 인형옷에 들어있는 사람입니다.
이 인형옷의 주인 여성은 1년전에 많은 의혹을 남기고 자살했고
그 이후로 이 인형옷은 아무도 입지 않고 구석에 박혀 있었습니다.

그러나, 카지와라의 사망 때도, 카즈코의 사망 때도 이 인형옷이 목격되었습니다.
테마파크의 직원들 사이에서는 1년전 사망한 여성의 유령이라는 소문이 퍼집니다.

주인공은 이 인형옷을 발견하고 추적하지만
오히려 기습에 당해 이마에 큰 상처만 입게 됩니다.
어지간히 큰 상처였는지 그 후로 이동하면서 만나는 캐릭터마다
이마가 왜 다쳤는지 물어봅니다.



그날 밤에 주인공은 방에서 혼자 생각하며 인형옷을 입은 범인을 추려냅니다.
모든 사람이 이마의 상처에 대해 걱정했는데
파라오 랜드의 핫토리 아저씨만이 상처에 대해 전혀 얘기를 꺼내지 않습니다.

의심하던 주인공은 나중에 상처를 가리고 핫토리와 다시 만나
자신이 습격당했다는 이야기를 꺼냅니다.
핫토리는 습격당했다는 말만 듣고 '상처는 괜찮냐'는 질문을 합니다.
상처가 났다고는 말도 안했는데 말이죠.
주인공의 의심은 확신으로 바뀝니다.

이런 추리 과정은 꽤 멋진 연출이라고 생각합니다.



범인 1순위로 떠오른 쿠사카베 소이치로라는 인물입니다.
MAOS의 설계자로 해킹을 통해 테마파크의 모든 시설을
자기 마음대로 조작할 수 있습니다.
카지와라의 죽음은 기계의 오작동이 아니라 범인의 계획대로였던 거죠.



세 번째 희생자는 오딘랜드의 발키리 쿄입니다.
정수관리시설의 큰 철문에 끼어 있는 것을 주인공이 발견합니다.
또다시 해킹을 통해 쿄를 함정에 빠뜨린 겁니다.

진짜로 몸이 반토막나서 사망하는 배드엔딩도 있습니다.
시체 CG를 적나라하게 보여주는데 그야말로 엽기적입니다.
다행히도 플레이어가 조금만 신경을 쓰면 쉽게 도와주는 게 가능합니다.



구사일생한 쿄는 주인공에게 진실을 털어놓습니다.
살해당한 카지와라와 카즈코, 그리고 자신
마지막으로 경비원인 이노우에와 쿠사카베 소이치로는 친구 사이였습니다.

테마파크 판타젠은 MAOS를 시범적으로 도입하는 최첨단 놀이시설이었지만
시간이 흐를수록 예산이 쪼들려서 부실공사를 하게 됩니다.
MAOS의 설계자인 쿠사카베는 부실공사를 격렬히 반대했고
놀이동산 측에서는 쿠사카베를 설득하기 위해 친구 넷에게 5천만엔을 건넸습니다.



쿠사카베는 매수에 응하지 않았고 이노우에는 몸싸움 도중에 쿠사카베를 죽이고 맙니다.
이노우에는 구급차를 부르자는 친구들의 말을 무시하고
쿠사카베의 시체를 판타젠 공사 콘크리트에 묻어버리고 5천만엔을 꿀꺽하기로 합니다.

이것이 카지와라, 카즈코가 살해당하고, 쿄가 살해당할 뻔한 사건의 동기입니다.
쿠사카베가 사실 살아 있어서 놀이동산을 해킹하여 사람들을 죽인 것처럼 보이지만
추리물들이 다 그렇듯이 쿠사카베는 진짜로 죽은 게 맞고
그를 계승하는 사람이 살인을 저질러 왔던 겁니다.



모든 만악의 근원인 이노우에입니다. 진범인보다 더 나쁜 놈입니다.
클라이막스에서 정말 개쓰레기스러운 모습을 보여줍니다.
사실 1년전에 놀이동산에서 사망한 여성도 자신이 죽였다고 자백합니다.
주인공과 이노우에는 드라크루 성에서 치열한 싸움을 벌입니다.
주인공이 이겨야만 해피엔딩을 볼 수 있습니다.



참고로, 제가 범인처럼 이야기했던 파라오 랜드의 핫토리는 진범이 아닙니다.
공범이기는 하지만 진범은 따로 있죠.
진범이 누군지 눈치채기 어려운 건 아니지만, 제 블로그에서는 굳이 이야기하지 않도록 하겠습니다.



제가 처음에 본 제대로 된 엔딩은 히카루 엔딩입니다.
히카루 엔딩을 봤을 때가 이 게임에 대한 평가가 최고치를 찍었던 때였죠.
히카루 엔딩도 여러 가지가 있고, 몇 개는 쓸데없는 엔딩도 있다고 생각하지만
어쨌든 제대로 진범인까지 잡는 엔딩을 볼 때까지
이 게임은 정말로 기가 막히게 멋졌습니다.


굳이 따지자면 추리물 자체에 아무 허점도 없다고는 볼 수 없습니다.
하지만 그런 허점들을 굳이 잡아낼 필요가 없을 정도로
전체적인 스토리가 하나의 추리물로서 흥미진진했습니다.

히카루 엔딩까지는 그랬죠. 처음 본 엔딩에서 제 평가가 최고치를 찍었다는 건
다른 엔딩은 결국 실망스러웠다는 이야기입니다.

저는 히카루 엔딩을 보았을 때, 꽤 만족했던 편이지만
그만큼 다른 엔딩에 대한 기대도 컸습니다.
히카루는 클라이맥스에서 활약이 좀 있기는 하지만
살인사건과는 직접적인 상관이 없는 캐릭터입니다.
그런 캐릭터의 엔딩도 이정도인데 직접적인 상관이 있는 캐릭터 엔딩은 어떻겠습니까?

초반에 살해당한 카즈코루트는 어떻게 전개될까요?
살해당할 뻔한 쿄루트는 또 어떻고요.
게다가 1년전 의문사한 여동생의 비밀을 찾으러 온 모리모토에 대한 떡밥도 남아있고,
진범인 루트도 있습니다.

이렇게나 멋진 히카루 엔딩을 봤는데, 그 후에도 기대할 요소가 산더미인 겁니다.
그때 당시의 제가 얼마나 흥분했겠습니까?


자, 그럼 퍼레이드에서 매달린 시체로 발견되었던
기계정비 담당 카즈코 루트부터 봅시다.
카즈코 루트를 보기 위해서는 초반 술자리에서의 선택지가 중요합니다.



하지만, 저는 카즈코루트에 돌입하고 얼마 지나지 않아 크게 실망했습니다.
본격적인 사건에 들어가기도 전에 H씬이 벌써 3개가 나오고 말았던 겁니다.
왜 초반부터 H씬이 몰려있는 걸까요?
당연히 후반에 등장이 없다는 거죠. 결국 카즈코의 사망은 피할 수 없는 겁니다.



카즈코 루트에 돌입했음에도 불구하고 살해당하고만 카즈코입니다.
그러나 실망했던 제 예상과 반대로 심폐소생술로 인해 카즈코는 죽지 않습니다.
구급차에 실려가 목숨을 건지게 됩니다. 제 기대는 단번에 다시 올라 갔습니다.
살아남은 카즈코는 살해당한 다른 루트에서는 미처 보여주지 못했던 활약을 보여주겠죠.

그리고 카즈코의 활약은 이렇습니다.
주로 데이트 이벤트가 발생하는 10일째의 활약입니다.



안타깝게도 아직 혼수상태입니다.
하지만 클라이막스의 전날 12일이 다가오고 그 때의 카즈코는...



안타깝게도 여전히 혼수상태입니다.
침대에 누워있더라도 정신이 돌아와서
말 한 마디라도 나눠주는 장면조차 없습니다.


그리고 클라이막스에 돌입하여,
이노우에와의 대결전에서도, 진범이 밝혀질 때까지도 전혀 등장이 없습니다.
결국 사건이 다 해결되고 엔딩곡이 흘러갑니다.
그리고 엔딩곡이 다 끝나고 나오는 장면은...



카즈코의 묘지를 참배하는 주인공입니다.
사실, 농담입니다. 이건 배드엔딩이죠.
아무리 그래도 카즈코의 활약이 전혀 없잖아요. 이런 엔딩은 말도 안 되죠.

이번에는 카즈코의 해피엔딩을 소개해 드리겠습니다.
10일째의 카즈코의 활약은 이렇습니다.



12일째의 카즈코의 활약은 이렇죠.



클라이맥스에서의 활약은 어땠냐고요?
모르겠습니다. 안 나와서요. 나오지는 않았지만 당연히 이거겠죠.



또 다시 엔딩곡이 흐르고, 해피엔딩 에필로그 장면입니다.



축 결혼 엔딩입니다. 몇 마디 나누고 엔딩이죠.

이런 엔딩은 사망 엔딩과 전혀 다른 게 없습니다.
결국 스토리상 달라진 점이라고는 심폐소생술을 했더니
카즈코가 살았냐 죽었냐의 차이밖에 없는 거죠.
살았든 죽었든 스토리상 아무 영향을 끼치지 않고, 대사 한 마디 없습니다.

소위 의무감 엔딩이라는 거죠.
'우리는 이 캐릭터를 만들었으니 스토리상 의미가 있든 없든
엔딩 하나정도는 만들어야할 의무가 있어.'라는 생각으로 만드는 게 이런 엔딩입니다.



쿄 엔딩도 마찬가지에요. 다른 루트와 다 똑같고 엔딩곡 후 에필로그만 다릅니다.
카즈코나 쿄의 경우는 클라이막스에서 전혀 활약이 없어요.
사건과 전혀 상관없는 캐릭터인 히카루는
클라이막스에서 활약이 있는데도 불구하고 말이죠.

모리모토의 엔딩도, 진범인 엔딩도 완전히 똑같지는 않았지만
제가 기대한만큼의 차이는 없었습니다. 90프로정도는 똑같았어요.



이 게임은 근본적으로 설계 결함이 있는 게임이라고 생각합니다.
이 게임의 스토리는 하나의 추리 드라마로서 완성도가 높았습니다.
다만, 그 스토리가 20개가 넘는 멀티엔딩을 끌고 갈 만한 스토리가 아니었던 거죠.

큰 스토리 하나가 비슷한 스토리 몇 개로 갈라지고,
그 몇 개에서 엔딩만 살짝 살짝 바꿔서 엔딩을 많이 만든 게임인 겁니다.
저는 첫 엔딩을 보고 남은 게 많다고 좋아했지만,
사실 그게 전부였고 남은 건 하나도 없었던 거죠.

그리고 사실 배분도 잘못했습니다. 엔딩 하나에서 너무 많이 알려줬어요.
1년전의 여성 사망사건 같은 경우는 사실 진상과는 관계없는 함정이었습니다.
게임 내의 등장인물과 게임외의 플레이어를 혼란시키는 장치였죠.

근데 그런 관계없는 사건의 진실까지 한 번에 다 알려줍니다.
그런 건 그 사건과 직접적인 관계가 있는 모리모토 루트를 위해 남겨 놨어야죠.
정작 모리모토 루트에서 보여줄 게 없어졌잖아요.



그럼 왜 이런식으로 게임이 설계되었을까요?
그건 원작이 97년도 게임이기 때문입니다.
90년대후반~2000년대초반까지는 공통적인 스토리에
캐릭터와 엔딩만 살짝 살짝 바꾸는 게임들이 많았습니다.
당시 기술적인 한계도 있었고,
그럼에도 불구하고 엔딩을 많이 만드는 것이 미덕이라고 생각되던 시절이라
그게 딱히 단점이 아니었습니다.

문제는 2009년에 나온 리메이크에도 그 단점이 똑같이 들어있다는 점입니다.
2009년에는 이미 엔딩만 살짝 바꾸는 스타일의 게임은 도태된 시기였죠.

<엽기의 함> 1편은 리메이크에서 대대적으로 갈아 엎었죠. 많은 단점을 해결했습니다.
근데 <엽기의 함 제2장> 리메이크의 경우는 자잘한 수정 이외에
스토리가 거의 수정되지 않았어요.

1편 원작은 허점이 많았기 때문에 리메이크에서 보완이 많이 필요했습니다.
하지만, 2편 원작은 애초에 완성도가 높았죠.
그래서 큰 변화없이 리메이크를 발매한 겁니다. 단점을 개선할 타이밍을 놓치고 만거죠.
원작의 높은 완성도에 리메이크가 발목을 잡힌 격입니다.




총평하자면, 그래도 단일 스토리는 꽤 훌륭한 게임입니다.
모든 CG, 모든 엔딩을 전부 다 보겠다고 생각하시는 분에게는
의미없는 부분이 많이 들어있는 게임이라고 생각합니다만
그냥 다른 엔딩 기대 안 하고 엔딩 몇 개만 보겠다 하는 분에게는
최고의 게임이라고 생각되는군요.

진범인을 잡기 위해서는 난이도가 조금 있는 편이지만
리메이크쪽은 시스템이 잘 정비되어 있기 때문에 재미있게 즐길 수 있습니다.
멋진 추리물을 원하시는 분들이라면 최소 할만했다는 평가가 나오리라고 생각됩니다.

댓글 2개:

  1. 저는 여형사 요코가 마음에 들어서 그거보고 간략하게 했었던 것인데 역시나 요코는 역시 마이너캐였군요. 스킵으로 하다보니.. 좋은글들 잘보고 갑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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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2. 잡상다운족//
    캐릭터의 매력은 적지 않았다고 생각하지만
    큰 활약이 없는 형사 캐릭터들까지 설명하긴 귀찮고,
    제대로 이야기하면 1편 리메이크까지 연결지어서 설명해야 하는데
    리뷰가 너무 번잡해질 것 같아서 그냥 생략해 버렸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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