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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1년 7월 11일 일요일

리뷰 : 통곡 그리고...(1)(1998/2/26,데이터 이스트)

* 이 리뷰는 치명적인 스포일러를 포함하고 있습니다.



<통곡 그리고...>는 세가 새턴용으로 발매된 게임입니다.

원화가가 같고 게임 방식이 비슷하기 때문에 
형식적으로는 관련이 없는 엘프 사 <유작>의 후속작 취급을 받고 있긴 하지만
<유작>과 달리 에로게가 아니기 때문에 H씬은 없습니다.
다만, 노출은 좀 있죠.

<유작>에 비해서는 그렇게까지 인지도가 높지 않습니다.
최근에 리메이크가 발매되었지만, 
한국어판도 PC판도 발매되지 않았기 때문에 여전히 인지도가 낮은 것 같습니다.


개인적으로도 한참 옛날에 한 번 플레이해 본 이후로
정말 오랜만에 다시 꺼내는 게임입니다.
플레이 방법에 대한 기억은 거의 나지 않기 때문에
이런 방탈출 계열 게임을 플레이하기에 정말 좋은 상태죠.

어렴풋이 떠오르는 제 기억으로는
<유작>과 마찬가지로 여러 캐릭터들이 갑자기 위기를 맞이 했는데,
구하기도 하고 못 구하기도 했으며,
구하지 못한 캐릭터들은 어디론가 사라져 버렸던 것 같습니다.

바닥에 다리가 끼었던 캐릭터도 있었는데 
그 캐릭터는 결국 구해주지 못했던 기억이 납니다.
나머지는 전혀 기억 못하는 와중에 유독 기억이 나는 한 장면입니다.



게임은 주인공과 클래스메이트인 리요의 하교길에서부터 시작됩니다.
주인공이 사는 동네는 최근에 두 사람이나 행방불명되었던 흉흉한 동네입니다.
안전한 버스에 타고 있긴 하지만 늦은 밤 하교길의 분위기가 정말 으스스하게 느껴집니다.



정류장에서 주인공이 다니는 학교의 선생님과 함께 웬 노인이 버스에 타게 됩니다.
선생님은 피곤한지 주인공이 있는지도 알아채지 못하고 맨 뒷자리에 앉았는데
노인은 빈자리 다 놔두고 선생님 바로 옆자리에 딱 붙어 앉습니다.



그러던 중 주인공이 탄 버스와 마주 오던 자동차의 추돌사고가 일어납니다.
주인공은 리요를 감싸려다 머리를 부딪혀 정신을 잃게 되죠.

하필 추돌사고가 일어난 장소는 깊은 산 속을 통과하는 도로였으며,
시대가 시대인지라 아무도 휴대전화를 갖고 있지 않습니다.
갑작스레 조난당한 사람들 눈에는 산 속에 덩그러니 서 있는 외딴 저택이 들어옵니다.

정신을 잃은 주인공이 걱정되기도 하니, 외딴 저택에 신세를 지기로 합니다.
그러나 저택은 아무도 살지 않는 폐옥이었습니다.
일단 버스 운전기사가 혼자서 도움을 부르기 위해 걸어 가기로 하고
나머지 사람들은 저택에서 쉬기로 합니다.



주인공이 정신이 들었을 때부터 제대로 된 게임이 시작됩니다.
조명도 밝지 않은 컴컴한 방에서 덩그러니 혼자 남겨져 있을 뿐만 아니라
누가 방문까지 잠궈놨군요.

방의 구석구석을 클릭하며 탈출에 필요한 도구를 찾아 사용하며, 퍼즐을 푸는 방식입니다.
<유작>과 마찬가지로 방탈출 게임이죠.
튜토리얼도 겸하고 있는 첫 방인만큼 그다지 어렵지 않게 탈출할 수 있습니다.



첫 방을 탈출한 이후에는 저택을 돌아다니며,
각 방들을 살펴 보고 같이 조난당한 여러 사람들과 대화를 나눕니다.

위에 있는 CG의 장소가 기억이 납니다.
저기서 누군가가 발이 끼어 죽을 위기를 맞이 했죠.
방을 잘 관찰하니 나사로 잠겨있는 콘센트와 끊어진 휴즈가 보입니다.
어딘가에서 '십자 드라이버'와 '휴즈'를 찾아 와야 한다는 걸 어렵지 않게 알 수 있죠.



아무튼 이렇게 저택을 돌아다니는 와중에 사태가 심각해지는데,
누군가가 저택 곳곳의 문과 대문까지 잠궈 버려서 탈출은 불가능해졌으며,
로커 안에서는 행방불명되었던 집배원이 시체로 발견된 겁니다.
범인이 무슨 생각으로 문을 잠궜는지는 아직 알 수 없지만
시체까지 발견되었으니 장난으로 끝날 일이 아닌 것만은 확실하죠.

과연 범인은 누구일까요?
등장인물들을 살펴 봅시다.


주인공의 소꿉친구이자 클래스메이트인 리요입니다.
온화하고 상냥한 성격으로 이런 게임에서 자주 등장하는, 
주인공을 지탱해 주는 치유계 캐릭터죠. 
스포일러가 되는 부분을 제외하면 그렇게 할 말이 많지 않은데
중간에 독방에 한참 동안 갇혀 있기 때문에 활약이 많이 줄어들은 탓도 있죠.

캐릭터별 해피엔딩 난이도가 상당히 높은 이 게임 중에서도
저를 정말 많이 골치 아프게 했던 캐릭터이기도 합니다.



주인공네 학교에서 선생을 하고 있는 마리에 선생입니다.
전작의 쿠미 선생과 비슷한 느낌인데,
도움은 쥐뿔도 안 되면서 혼자 멘탈이 흔들리는 모습을 보여준다는 점이 비슷합니다.

버스에 같이 탔던 영감에게 뭔가 협박을 받고 있는지
이 위기 상황에서도 야한 짓을 당하고 있습니다.
서브 캐릭터들의 스토리가 비교적 약한 게임이지만
마리에 선생이 대체 무슨 협박을 당하는가에 대한 문제는
플레이어를 꽤 궁금하게 만듭니다.
마리에 선생 개인 루트에서 진실이 밝혀지는데
너무나도 별 볼일 없는 결말이라 허무했습니다.



상대 차에 타고 있던 이츠미와 치사라고 합니다.
근처 동네에 여행왔다가 모르는 사람의 차를 얻어 탔는데
하필 그 차가 사고를 당하는 바람에 말려들게 된 캐릭터들이죠.

왼쪽의 이츠미는 밝고 활발한 성격입니다.
주인공을 좋게 생각해서 적극적으로 다가오는 경우도 있지만,
치사가 먼저 죽어 버리기라도 하면 주인공을 의심해서 함정을 파기도 하죠.
함정이 참 허술합니다. 머리는 그다지 좋지 않은 것 같군요.

오른쪽의 치사는 점잖고 얌전한 성격입니다.
아직 어리지만 뛰어난 궁도 선수로 신문에도 나올 정도죠.
갈색 롱헤어의 정통파 히로인으로 첫인상은 가장 제 마음에 듭니다.
엄밀히 말하면 옛날에 플레이한 적이 있기 때문에 첫인상은 아니지만
아마 옛날에 플레이했을 때도 치사를 가장 마음에 들어 했을 거에요.



수상한 노인 칸다가와입니다.
마리에는 틀림없이 칸다가와에게 협박당하고 있으며,
그 외에도 여러 여성들이 칸다가와에게 희롱을 당하게 됩니다.

명백하게 착한 캐릭터는 아니지만,
이 노인은 범인이 아닐 거라고 처음부터 생각했습니다.
왜냐면, 이런 장르에서 범인은 대부분 이렇게까지 대놓고 분탕을 치지 않기 때문이죠.
집단에서 따돌림을 당해 버리면 아무 범죄도 저지를 수 없기 때문에
범인이라면 좀 더 자제하는 모습을 보였을 겁니다.



초반 시점에서 가장 의심스러운 사람은 케이입니다.
외관만 봐도 범인이 어울리는 안경 낀 미형 남성이죠.

거기에 이런 장르에서 중요한 법칙 중에 하나로 '판 깐 놈의 법칙'이라고 있습니다.
지금 이 판을 누가 깔았느냐,
다시 말해 이런 상황이 누구 때문에 벌어졌는가를 먼저 확인해야 한다는 법칙이죠.

케이는 버스와 충돌한 자동차를 운전했던 장본인입니다.
교통사고가 일어나지 않았다면 이런 저택에 오지도 않았을 테고,
승객들이 교통사고가 일어나도록 조작하기는 힘들죠.
버스 기사 혹은 케이가 범인일 확률이 높습니다.

버스 기사는 이 장소에 없기도 합니다만,
승객을 선택하기도 힘들고, 앞에서 다른 차가 올 것도 예측하기 힘이 듭니다.
반면에 케이는 히치하이킹으로 두 명을 태운 상태이며,
버스가 오는 시간대도 쉽게 알 수 있죠.
여러 모로 가장 범인에 가까운 인물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이후에, 주인공의 활약으로 저택 내의 잠겨 있는 문을 열게 되면
세 명의 캐릭터가 추가됩니다.



버스 승객이었던 노마와 코스즈입니다.

왼쪽의 노마는 부잣집 아가씨인데 괜히 가출해서 버스를 탔다가 사고가 나고 말았죠.
철없는 말괄량이 아가씨 느낌이기는 한데
주인공 앞에서 부자라는 걸 그다지 과시하지도 않고
사투리를 너무 심하게 써서 부잣집 아가씨라는 느낌은 그다지 나지 않았습니다. 

오른쪽의 코스즈는 노마 집에서 고용되어 있는 메이드입니다.
원래 복장은 메이드복이 아니었지만, 
실수로 선반에 있던 액체가 쏟아지면서 입고 있던 옷이 더럽혀졌죠.
마침 이 폐옥에 남아 있던 옷은 메이드복 밖에 없었는데
그게 딱 애초에 메이드였던 코스즈에게 잘 어울렸다라는 이야기입니다.

지나치게 억지스러운 전개지만 이건 인정해 줘야 합니다.
이토록 멋진 저택을 무대로 만든 게임인데
여기에 메이드 하나 등장시키지 않는다면 
이건 게임 제작자들의 직무유기가 아니겠습니까?
무슨 억지를 써서라도 메이드가 등장할 필요가 있었죠.
스토리상으로도 숨겨진 의미가 있고요.



마지막 캐릭터는 타나베입니다.
처음 타나베를 봤을 때는 이걸로 케이가 범인 확정이라고 생각했죠.
범인이라는 중요한 역할을 주기에는 외관이 영 아니잖아요.

하지만, 뜻밖에도 수상한 모습을 많이 보여줍니다.
어떤 캐릭터를 구해줬을 때는 뒤늦게 나타나서 '쳇'이라면서 혀를 차는 모습까지 보여줬죠.
생각해 보면, 외관만으로 사람을 평가해서는 안 됩니다.
범인 후보2에 올려 놓도록 하죠.



캐릭터는 꽤 매력적으로 만들었다고 봅니다만
캐릭터를 활용하는 측면에서는 조금 아쉬운 점이 있습니다.
방에 들어 갔을 때나, 이벤트가 일어났을 때의 대사 이외에는
따로 캐릭터들과 대화를 나누지 못하게 되어 있어요.
'말한다'라는 커맨드가 엄연히 존재함에도 불구하고 별다른 대화를 하지 않죠.

평범한 대화까지 만들기에는 제작비가 부족했던 건지,
아니면 그런 대화가 게임의 분위기를 해칠 거라고 생각했는지 잘 모르겠지만
개인적으로는 캐릭터들과 접촉할 기회가 좀 더 많았다면 좋았을 거라고 생각합니다.



몇 번 안 되는 접촉 기회에도 캐릭터들은 매력적인 모습을 많이 보여줬습니다.
정통파 미소녀 치사가 게임 도중에 리본을 선물받아 
포니테일로 헤어스타일을 바꾸는 이벤트가 있는데
주인공에게 칭찬받고 얼굴을 붉히는 모습이 마음에 듭니다.

이런 흉흉한 저택 속에서 탈출 한 번해 보겠다고 
각 방을 몇 번씩이나 돌아다니며 개고생하는 플레이어의 마음을 
정화시켜주는 오아시스와도 같은 이벤트죠.
저도 모르게 얼굴에 미소가 피어납니다.



그 직후에 지하실 세차장 바닥에 발이 끼어 버린 치사의 모습을 발견하기 전까진 말이죠.
아니, 여기서 사망하는 제 기억 속의 캐릭터가 치사였나요?

치사는 주인공에게 열쇠를 찾아냈다면서 건네 줍니다.
다른 캐릭터들은 주인공에게 조금의 도움도 안 되는 와중에
한 몸 희생하며 열쇠를 찾아 주는 치사의 모습에 감동을 받게 됩니다.

그건 그렇고, 이제 난리가 났습니다.
까딱 잘못하면 포니테일 치사는 등장하자마자 이대로 퇴장하게 되는 겁니다.
그것도 첫 번째 희생자로요.

구하는 방법은 대충 짐작이 갑니다.
바닥에 있는 창살을 육각형 전동 드라이버로 풀어 버리는 거죠.
마침 전동 드라이버는 갖고 있습니다.

근데, 전기가 없어요.
아까 말했듯이 콘센트는 막혀 있고, 휴즈는 끊겨 있습니다.
'십자 드라이버'와 '휴즈'가 있어야 하는데
저택을 내내 돌아다니는 동안 그 두 아이템은 구경도 못했습니다.
'전동 드라이버가 있는데 왜 구하질 못하니...'의 상황인 거죠.

마지막 희망은 치사가 건네 준 열쇠입니다.
이 열쇠로 들어갈 수 있는 장소에서 '십자 드라이버'와 '휴즈'를 가져 와야 하는 거죠.
잠겨 있는 방이 아직 많은데 이곳 저곳 시험을 하다 보면,
치사가 준 열쇠는 엘리베이터 열쇠라는 걸 알 수 있습니다.

치사님, 잠시만 기다리세요. 
제가 빨리 드라이버와 휴즈를 찾아서 돌아 오겠습니다.



그렇게 급한 마음으로 엘리베이터를 타고 2층으로 올라가면,
엘리베이터가 고장나 버립니다.
엘리베이터를 고치기 전에는 1층으로 돌아갈 수가 없죠. 함정에 걸린 겁니다.


치사의 이벤트야말로 이 게임의 책략이 총 집결되어 있는
트릭의 결정체라고 할 수 있습니다.

포니테일이야 제 개인적인 취향이니 그렇다 치더라도
주인공의 말 한 마디에 얼굴을 붉히는 정통파 미소녀 치사의 위기에
어떻게 냉정함을 유지할 수 있겠습니까?

게다가, 직접적인 아이템인 전동 드라이버까지 플레이어의 손에 쥐어 줬으며,
구하는 방법도 간단하고 무슨 아이템이 더 있어야 하는지까지 쉽게 알 수 있게 되어 있습니다.
해당 아이템을 찾지 못했을 뿐이죠.
게다가 초보자는 게임 진행이 잘 안 되기 때문에
저택을 샅샅이 수색하기 마련인데 그동안 그 아이템들은 코빼기도 보이지 않았습니다.

그런 플레이어에게 마치 한 줄기 동아줄을 내려 주듯이 엘리베이터 열쇠를 건네 줍니다.
누구라도 눈 뒤집혀서 엘리베이터를 탈 수밖에 없는 설계죠.
하지만, 간절한 마음으로 붙잡았던 그 동아줄은 썩은 동아줄이었던 겁니다.



2층에서 한참을 헤메다 1층으로 귀환한 후,
지하실 세차장 문 앞에 가면 볼 수 있는 광경입니다.
저는 희생자가 흔적도 없이 사라졌던 걸로 기억했는데
지금 보니 CG만 없을 뿐 텍스트로 적나라한 시체 묘사가 있었습니다.
기억의 착오였던 모양입니다.

참담한 심정입니다.
제가 옛날만큼 포니테일을 좋아하지 않고,
멘탈이 많이 단련되어 있기 때문에 망정이지
옛날에 플레이할 때는 얼마나 큰 충격을 받았겠습니까?
말 그대로 통곡을 했을 겁니다. 리뷰 한 주 쉬었어야 돼요.



슬픔을 뒤로 하고 냉정하게 생각해 봅시다.
저는 어렴풋하게나마 이런 불행한 미래를 예측하고 있었고,
그만큼 철저하게 저택을 수색했습니다.
하지만, '십자 드라이버'와 '휴즈'따위는 어디에도 없었어요.

과연 저는 무엇을 실수했던 걸까요?
그 진상은 리마스터판과 함께 하는 다음 리뷰에서 밝혀지게 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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