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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1년 7월 18일 일요일

리뷰 : 통곡 그리고...(2)(1998/2/26,데이터 이스트)

 * 이 리뷰는 치명적인 스포일러를 포함하고 있습니다.



<통곡 그리고...>는 2018년도에 플레이스테이션 기종으로 리마스터가 나왔습니다.
2019년에는 닌텐도 스위치판도 나왔죠.

20년만의 리마스터답게 그래픽이 상당히 좋아졌고,
무엇보다도 읽은 문장 자동 스킵 기능이 생겼습니다.
추가된 CG나 이벤트, 힌트 기능 등 다른 변경점도 있지만
자동 스킵만큼 훌륭한 변경점은 없는 것 같아요.
휴대용으로는 터치 스크린이 지원되는 것도 소소하게 마음에 드는 점입니다.



이 게임에서 가장 주목 받는 부분인 난이도에 대해 살펴 봅시다.
사실, 방탈출 메인 스토리가 그렇게 어려운 건 아닙니다.
이 정도도 힘들다고 느껴지면 이런 계열 게임을 하지 말아야죠.
잘 안 풀리면 오래 헤멜 수도 있지만 이 게임보다 어려운 게임은 넘쳐 납니다.
메인 난이도는 보통 수준이라고 생각합니다.



어렵게 느껴지는 부분은 각 캐릭터를 구하는 방법입니다.
저도 첫 플레이에서 노마를 제외한 모든 캐릭터가
뭐 때문에 죽는지도 모르고 그냥 막 죽어 나가더라고요.


이렇게 되는 이유는 게임이 사람의 심리를 이용하는 트릭을 사용하기 때문입니다.

탈출하기 위해서는 저택을 샅샅이 수색해야 하는데
초심자는 진도가 지지부진할 수밖에 없습니다.
그렇게 한참을 헤메다가 열쇠를 발견한다면 어떨까요?
무슨 문제가 터질 거라고는 생각도 못하고 다짜고짜 열쇠부터 잡으러 가겠죠.

이츠미와 도망치는 장면도 마찬가지입니다.
정체 모를 범인이 쫓아 오는 상황에서 
이츠미를 먼저 숨기고, 자신도 숨어야 하는데 
숨길 수 있는 장소는 한정이 되어 있고, 어디가 안전한지도 딱히 알 수가 없습니다.
딱히 시간제한이 있는 건 아니지만 마음이 급해질 수밖에 없는 거죠.

이런 식으로 플레이어의 급한 심리를 이용하고 있습니다.
뿐만 아니라, 플레이어의 느긋한 심리를 이용하는 부분도 있죠.



아틀리에 위쪽에 있는 비밀의 방에 갇히게 된 리요입니다.
이 방은 열쇠도 안 보이고 어떻게 구해야 할지 감도 안 잡힙니다.
실제로도 갇히자 마자 구하는 방법따윈 없습니다.
스토리상으로 구할 수 있는 도구는 나중에서야 얻을 수 있기 때문에
지금은 지나칠 수밖에 없죠.

다시 저택을 수색하던 중, 
아틀리에 계단에서 유력 용의자1인 케이가 내려오는 장면을 목격하게 됩니다.
깜짝 놀라서 비밀의 방으로 올라가 보면...



그냥 아무 일없이 멀쩡합니다. 리요가 얌전히 기다리고 있을 뿐이죠.
혼자 있기 심심할 텐데 퍼즐이라도 찾아서 갖다 주고 싶네요.
그 후에도 저택을 계속 돌아다니면서 잠깐잠깐 방문하는데 별 일없이 잘 살고 있습니다.

그러던 중, 비밀의 방 문앞에서 유력 용의자2 타나베가 목격됩니다.
이번엔 혹시하고 긴장하며 방을 확인하지만
여전히 리요는 아무 일 없이 평온합니다.

이런 식으로 플레이어에게 느긋한 마음을 심어주는 겁니다.
사실은 타나베 등장 시점이 마지막 기회였습니다.
그 후에는 강제 이벤트로 왔다갔다 해야 하고,
그 이벤트가 끝난 이후에 리요는 사망하게 되죠.



저를 대성통곡하게 했던 치사를 구하는 방법도 마찬가지입니다.
급한 마음과 느긋한 마음을 잘 이용했죠.

'십자 드라이버'는 퍼즐을 풀어야만 얻을 수 있습니다.
1번부터 15번까지 있는 숫자 패드에서 비밀번호 네 개를 눌러야 합니다.
그것도 두 번이나 맞춰야 하죠.

문제는 비밀 번호를 알아낼 수 있는 힌트가 어디에도 안 보인다는 점입니다.
하지만 그렇게 급하게 생각할 필요는 없죠.
왜냐면, 이런 스토리가 있는 방탈출 게임에서는 당장 힌트가 없더라도
스토리를 진행하다 보면 힌트를 찾을 수 있기 때문입니다.
이런 느긋한 마음이 바로 함정이었던 거죠.


이 게임의 퍼즐은 철저하게 스토리 순서를 따르도록 설계되어 있습니다.
예전에 플레이한 기억이 있다든가 공략집을 보고 왔다든가 해서
비밀번호를 미리 알고 있더라도 소용없어요.
왜냐면, 주인공이 어딘가에서 힌트를 보고 오기 전에는 
숫자패드를 누르려고 시도조차 안 하기 때문이죠.
우연히 아무 번호나 눌러보니 맞았다는 스토리가 따로 준비되어 있지 않아요.

예를 들어, 달력에서 날짜를 보고 비밀번호를 입력해야 하는 문이 있습니다.
달력을 게임 내에서 보기 전에는 플레이어가 비밀번호를 이미 알고 있다고 하더라도
주인공이 번호를 누르는 시도조차 하지 않습니다.
그냥 지나칠 수밖에 없죠. 

역으로 말하면, 비밀번호를 누를 수 있다는 건
이미 퍼즐을 풀 수 있는 힌트가 충분히 제공이 되어 있다는 뜻입니다.
너무나 미흡한 나머지 이게 힌트인지조차 눈치 못 채는 경우도 있지만
열심히 머리를 굴리면 어떻게든 비밀번호 네 자리를 유추할 수는 있다는 거죠.


첫 플레이에서 저는 이 구조를 파악하지 못했기 때문에 치사를 살리지 못했던 겁니다.
지금 어떻게든 퍼즐을 풀어 볼 생각은 안 하고,
나중에 힌트가 나올 거라는 느긋하고 안일한 생각을 했던 거죠.

나중에 더 쉽고 직접적인 힌트가 나오긴 합니다. 치사가 사망한 이후에요.
그렇게 찾던 십자 드라이버가 뒤늦게 손에 쥐어지면 
다시 한 번 눈물이 나올 것만 같습니다.



이런 식으로 사람의 심리를 이용하고 있기 때문에
첫 플레이에서는 뭘 잘못한 줄도 모르고 사람들이 죽어 나가지만,
2회차 플레이만 되어도 침착하게 행동하며 캐릭터들을 도와 줄 수 있습니다.

어떤 분들은 첫 플레이에서 사람들이 이유도 모르고 죽어 나가는 걸 보고 
게임이 불합리하거나 난이도가 높다고 표현하기도 합니다.
하지만, 이건 의도된 디자인이죠.

<유작> 리뷰에서도 이야기한 적이 있는데
어느 정도 난이도를 높여서라도 1회차에는 사람들이 다 죽어나갈 필요가 있어요.
그래야 <그리고 아무도 없었다> 스타일로 한 명씩 서서히 사라지는 호러를 느낄 수도 있고,
다음 플레이에서는 반드시 구해 내겠다는 도전 의식도 생기는 거죠.

이 게임은 심리 트릭을 통해 난이도를 크게 높이지 않았으면서도
1회차 플레이의 긴장감을 만들어 냈습니다.
이건 불합리한 게 아니라 멋진 게임 디자인이죠.
이 게임의 불합리함은 따로 있는데 나중에 얘기하도록 하죠.


이 게임에서 또한 뛰어난 점은 다양한 패턴입니다.
여러 구간에서 문제를 해결하는 방법이 하나가 아니라 두 가지입니다.
예를 들어, 깨진 창문을 가릴 때는 거울을 사용할 수도 있고, 수건을 사용할 수도 있죠.
이벤트에 영향을 주는 경우도 가끔 있지만,
대부분은 방탈출하려는 플레이어의 창의성을 존중해서 
어떤 아이템이든 쓸 수 있게 해 준 배려입니다.



루트에 따라 또는 순서에 따라 다양한 이벤트가 전개되기도 합니다.
누군가가 사망해야만 볼 수 있는 이벤트도 존재하죠.

이츠미의 경우는 치사가 사망하면 
주인공이 범인이라고 생각하고 함정을 파는 이벤트가 있습니다.
주인공 앞에서 배 아픈 척을 하면서 주인공을 유인하려고 하는데,
주인공이 진짜 범인이었으면 어떻게 하려는 생각이었을까요?
주인공이 도중에 알아 채고, '난 범인이 아니야'라고 항변해 보지만
이츠미는 그런 얘기는 안 믿는다고 하고 도망칩니다.



그 후에 이츠미를 다시 만나면,
이츠미가 범인에게 쫓기고 있다면서 주인공에게 도와달라고 하는 이벤트가 발생합니다.

아까까지만 해도 주인공이 범인이라고 따지던 캐릭터가
갑자기 도와달라고 하는 건 이상하잖아요.
이런 다양한 루트가 있는 게임을 만들 때 어려운 점은
앞뒤 스토리에 모순이 발생하지 않도록 하는 건데
이 게임은 이런 부분에서 살짝 아쉬웠습니다.



탈출 직전의 선택지입니다.
탈출구를 열고 '남은 사람들을 부르러 간다'와 '혼자서 도망간다'는 선택지가 나오죠.

혼자서 도망가면 뭐 어쩌자는 거죠?
선택해 봐야 별 내용도 없어요. 죽기 싫으니 빨리 도망가겠다는 몇 문장 나오고 끝입니다.

'안녕히 계세요, 여러분. 여러분도 행복하세요~'같은 인삿말조차 없죠.
나중에 학교에서 리요나 마리에 선생 얼굴은 어떻게 보려고 이러는 걸까요?



이 게임은 엔딩이 많은 게임입니다.
갑작스럽게 사망하는 배드 엔딩을 제외해도
각 캐릭터마다 황금엔딩, 노멀엔딩이 있고
특정 캐릭터 몇 명은 범인과 대결하는 엔딩까지 준비되어 있죠.



각 캐릭터 엔딩을 보기 위해서는 
그 캐릭터의 개인 이벤트를 전부 보아야 합니다.
마지막에 황금 이벤트를 보면 황금엔딩, 그걸 보지 못한다면 노말엔딩이죠.

근데 이 개인 이벤트를 보는 난이도가 장난이 아닙니다.
어디서 이벤트가 발생하는지 알 수 없는 건 기본이고,
잠깐의 타이밍을 놓쳐도 이벤트를 영영 못 볼 수 있죠.
이벤트를 놓쳤다는 것조차 알 수 없기 때문에 
처음부터 다시 시작하기도 힘듭니다.


그 와중에 가장 저를 열받게 하는 건 바로 '엔딩의 우선순위'입니다.



마지막 엔딩 장면입니다.
탈출한 이후에 경찰과 같이 저택으로 현장 검증을 온 거죠.
저택 내의 방에 들어가면, 각 캐릭터들이 한 명씩 기다리고 있고 대화를 나눌 수 있습니다.
마치, 누구 엔딩을 볼 것인지 선택할 수 있는 것처럼요.

하지만, 안 됩니다. 시스템상 엔딩에 우선 순위가 있어요.
예를 들어, 치사 황금엔딩 조건을 충족했더라도
코스즈 노멀 엔딩 조건도 같이 충족했다면 코스즈 노멀 엔딩을 볼 수밖에 없는 겁니다.
치사 엔딩을 보는 방법은 우선 순위에 있는 다른 캐릭터 이벤트를 전부 피하고
치사 이벤트만 보는 거죠.



이 시스템이 얼마나 거지같은지 안 겪어 본 사람은 모릅니다.
동시 공략이 안 되기 때문에 각 캐릭터들의 엔딩을 다 보기 위해서는
할 때마다 처음부터 다시 플레이해야 돼요.
황금엔딩과 노말엔딩은 후반부 분기에 세이브를 통해 한꺼번에 볼 수 있지만
각 캐릭터들의 엔딩은 동시에 공략하려다가 한 쪽이 망해 버리는 경우가 생길 수 있습니다.
정식 공략 사이트에서조차 한 번에 한 명씩만 공략하는 걸 추천하고 있어요.

게다가, 각 캐릭터 개인 이벤트는 찾기가 힘들기 때문에
그 이벤트를 찾기 위해서는 저택을 마구잡이로 돌아다녀야 합니다.
근데 그렇게 돌아다니면 다른 캐릭터 엔딩 조건을 충족시켜 버릴 수도 있죠.
저택을 한없이 돌아다닐 수 밖에 없도록 만들어 놓고,
한없이 돌아다니면 물먹는 함정까지 만들어 놓은 겁니다.

이건 정말 불합리한 시스템이에요.
제가 리뷰 도입부에서 읽은 문장 자동 스킵 기능을 그렇게 찬양한 이유를 아시겠죠?
수도 없이 다시 플레이해야 하기 때문이에요. 미친 난이도입니다.
공략집없이 모든 엔딩, 모든 CG를 모으는 건 불가능한 수준이에요.
비밀번호를 풀기 위해 00000에서 99999까지 전부 시도해 보는 정도로 도전해야 합니다.

심지어 주요 캐릭터 몇 명의 엔딩을 보지 않으면
이 게임의 진상을 전부 파악할 수도 없습니다.
저는 각 캐릭터들의 스토리마다 진상을 나눠 놓는 게임 디자인을 좋아하는데
난이도 때문에 이 게임에서는 별로였다고 생각합니다.
진실을 알아내기 위해 보통 고생을 해야 하는 게 아니에요.

리요나 코스즈같은 특별한 스토리라면 모를까
중요하지 않은 캐릭터들은 동시공략을 할 수 있도록 만들었어야 돼요.



총평하자면, 방탈출정도만 즐기겠다고 생각하고 플레이하면
너무 쉽지도, 너무 어렵지도 않은 적절한 난이도의 게임입니다.
화사한 미소녀들, 무거운 저택의 분위기와 함께 양질의 방탈출 게임을 즐길 수 있죠.

제대로 파고 들겠다는 분들께는 무시무시한 난이도를 선사할 겁니다.
이 게임보다 더 어려운 난이도의 어드벤처 게임도 여럿 존재하지만
불합리한 시스템때문에 체감 난이도가 더 높게 느껴집니다.

리마스터판은 축복입니다.
어차피 옛날이나 지금이나 한국어판은 없는 게임이니
웬만하면 리마스터판으로 플레이하는 걸 추천드립니다.

댓글 2개:

  1. 리뷰하느라 고생하셨습니다. 글은 게임을 해본 후 읽을 예정입니다. 저도 게임을 해본 후 감상으로 짧은 댓글을 남기고 싶은데 리마스터판중 백개먼님은 어떤 기기로 하셨는지 여쭤봐도 될까요? 여러 기기로 해보셨다면 그 차이도 궁금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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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2. hityou2//
    제가 플레이한 건 닌텐도 스위치판이었습니다.
    PS VITA는 제가 안 갖고 있고 PS4보다는 터치 스크린이 있는 스위치가 나을 거라고 생각했습니다.

    터치 스크린 이외의 차이는 딱히 없는 것으로 알고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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