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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1년 12월 5일 일요일

리뷰 : EVE ZERO(2000/3/30,시즈웨어)

 * 이 리뷰는 치명적인 스포일러를 포함하고 있습니다.



EVE 시리즈의 네 번째, 혹은 관점에 따라 세 번째 작품인
<EVE ZERO>입니다.
플레이스테이션판으로 먼저 발매되었으며,
이후 추가 요소를 넣어 PC판, 드림캐스트판이 차례로 발매되었습니다.

끈질기지만 이 게임 역시,
EVE 시리즈를 플레이해 보고 싶은 분들이
세 번째로 버려야 하는 작품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부제만 해도 ZERO, 없는 셈 쳐야 하는 게임이라는 거죠.

사실 호불호가 갈리는 작품으로
괜찮다는 평가를 내리는 분들도 많이 있습니다.
<EVE The Lost One>보다는 낫다는 평가가 많이 있는데
이게 좋다는 건지, 나쁘다는 건지 알 수 없네요.



주인공은 코지로와 마리나로
<EVE burst error> 시기의 2년 전 사건을 다룬 프리퀄격 게임입니다.
애초에 <EVE burst error>는 속편을 염두에 두지 않은 게임이며,
프리퀄 작품도 염두에 두지 않았기 때문에
기획 자체가 게임 스토리에 제약을 많이 거는 기획이었습니다.

다음 편에 멀쩡히 살아 있어야 할 캐릭터를 죽일 수도 없었고,
<EVE burst error> 시점에 처음 만난 히무로 쿄코 같은 
인기 캐릭터를 등장시킬 수도 없었죠.

가장 큰 문제는 <EVE burst error>에서 처음 만나는 두 주인공,
코지로와 마리나가 ZERO에서는 게임 내내 한 번도 대면할 수 없다는 것이었습니다.
두 캐릭터의 상호작용이야말로 EVE 시리즈의 독특한 장점이라고 생각하는 저에게 있어,
이 문제는 굉장히 심각한 문제였죠.



<EVE burst error>에서는 코지로와 마리나가 아직 모르는 사이일 때,
익명의 협업을 통해 명장면을 연출한 바 있죠.
ZERO에서도 의지만 있었다면 
그런 식으로 둘이 절묘하게 엇갈리는 장면을 만들 수 있었을 겁니다.

아쉽지만 상호 협력하는 장면은 
목소리도 안 들리는 곳에서 서로 문 두드리는 장면 하나 밖에 없었습니다.
놀리는 것도 아니고 이럴 거면 그냥 만나는 장면이 아예 없는 게 나은 수준이에요.



물론 2년 전 이야기를 다루는 것에 단점만 있는 건 아닙니다.
예를 들어, 코지로와 마리나의 풋풋했던 시절을 보여줄 수도 있었겠죠.
아쉽게도 이 게임에서는 그런 요소가 많이 보이지 않았습니다.
성격은 대체로 다른 시리즈와 별 차이가 없게 묘사되었죠.

실력적으로는 어설프고 미숙한 모습을 보여주기도 했는데
이건 캐릭터가 미숙하다기 보다는 작가가 미숙하다는 느낌이었습니다.


그 외에도, <EVE burst error>의 스토리와 연결되는 클론을 소재로 다루었는데
이 역시 안 다뤄도 별 관계없었다고 생각합니다.
오히려 스토리상 모순만 생겼다고 비판하는 분들도 계시죠.



이런 저런 문제 속에서도 ZERO를 기대할 수 있었던 이유는 바로 캐릭터입니다.
<EVE burst error>에는 매력적인 캐릭터들이 많이 등장했지만
상당수가 그 작품에서 사망했죠. 속편에 등장할 여지를 주지 않았습니다.

하지만, 2년 전 시점을 다룬다면 그런 부분에 있어서는 자유로워지는 거죠.
대표적인 캐릭터로 아카네가 있습니다.
사실 아카네는 죽지 않았지만 어쨌든 <EVE burst error>에서 큰 일을 당했고,
그 때문인지 후속작에서는 전혀 등장하지 못했죠.
하지만 ZERO에서는 멀쩡히 등장합니다.

아카네 캐릭터는 그럭저럭 잘 뽑혔다고 생각합니다.
캐릭터의 역할 자체가 감초 역할로 한정적이긴 하지만
그래도 매력적이었어요.



재수없는 라이벌, 니카이도 역시 ZERO에서 등장했습니다.
주인공이 맡은 사건에 억지로 끼어 들어 본인이 먼저 해결하겠다는 생각을 갖고 있죠.

이 게임에서도 야요이를 짝사랑하는 포지션으로 나오는데
<EVE burst error>에서는 숨은 속셈도 있었고, 비열한 성격도 많이 보여줬지만
ZERO에서는 야요이를 사랑하는 마음만큼은 진심인 순수한 이미지로 나옵니다.

개인적으로는 이 부분이 어색하게 느껴졌지만 사실 그럴 수 있죠.
왜냐면, 2년 전 이야기니까요. 
2년이면 순수했던 사람이 세속적인 야심가로 충분히 변할 수 있는 시기입니다.

ZERO에서 니카이도가 흑화한 계기를 넣었다면 참 좋았을 겁니다.
코지로와 대결에서 패배하고 그에 따른 열등감을 보여 주는 식으로 말이죠.

근데, 그런 부분이 없을 뿐더러
중반부부터는 아무 이유도 없이 등장도 안 해요.
스토리 만들다 니카이도 까먹었나 할 정도로 갑자기 사라집니다.



겐자부로의 캐릭터 활용도 아쉬웠습니다.
이 분은 니카이도와 달리 그래도 인사라도 하고 사라지는데
캐릭터의 매력에 비해 활약 기회가 너무 적었다고 생각합니다.
하이라이트 부분에서 뭔가 하나 해 줄 거라고 생각했는데
정작 그 역할은 애매한 신 캐릭터가 했죠.



개인적인 평가로는 과거의 이야기를 다룸으로써 
얻은 이득보다는 손해가 더 컸다고 봅니다.
이득을 극대화할 방법도 있었고 손해를 최소화할 방법도 있었지만
이 게임은 그런 방법을 거의 사용하지 않았죠.

프리퀄 게임을 기획하면서 그 기획의 장단점에 대해서는
아무 생각이 없었다고 볼 수밖에 없습니다.
차라리 과거 시점의 이야기가 아니었다면 제 평가가 좀 더 올라갔을 겁니다.



프리퀄을 감안하지 않았을 때,
ZERO 자체의 스토리는 중반까지 그럭저럭 할 만했다고 생각합니다.
루스나 토아 등의 새로운 캐릭터들은 꽤 매력적이었어요.



신 캐릭터의 경우는 <EVE burst error> 시점까지
살아있으면 안 된다는 강박관념이라도 있었는지 그냥 다 죽여 버립니다.
스토리상 꼭 죽여야 할 이유가 있었는지도 모르겠고,
그냥 퇴장시키기 위한 죽음일 뿐이에요.

왜 꼭 죽여야 하는지 모르겠습니다. 2년동안 서먹해졌다고 하면 되잖아요.



마지막에 다 폭파시켜서 해결하는 엔딩은 너무 아쉬웠습니다.
코지로, 마리나의 활약이 눈에 띄지 않았을 뿐더러
탈출 역시 너무 억지스러웠죠.

그래도 허술하고 졸속으로 전개되는 마무리는
EVE 시리즈 전통이기 때문에 그냥 무난하게 봐 줄만한 것 같습니다.



총평하자면, 다른 EVE 시리즈들과 마찬가지로 아쉬움이 가득한 게임이었습니다.
다양한 시도를 해 보고 있긴 한데 그다지 안정적이진 않아요.
시리즈의 장점에 대한 이해가 부족하지 않았나 생각합니다.

영원히 넘을 수 없는 최고의 게임인 <EVE burst error>와
많은 사람에게 최악으로 남아있는 <EVE The lost one>을 제외하고
ZERO와 TFA 중에 뭐가 더 좋은 게임인가는 사람마다 의견이 다른 것 같습니다.

미완성이라도 EVE 시리즈 특유의 감성을 원하시는 분께는 TFA가
조금이라도 더 완성도 높은 스토리를 원하시는 분께는 ZERO가 더 맞다고 생각됩니다.
재미있는 게임을 원하시는 분은 둘 다 하지 마세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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