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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2년 8월 28일 일요일

리뷰 : for elise ~엘리제를 위하여~(1996/12/6,CRAFTWORK)

* 이 리뷰는 치명적인 스포일러를 포함하고 있습니다.



<for elise ~엘리제를 위하여~>입니다.
CRAFTWORK라는 회사에서 개발한 작품이죠.

CRAFTWORK는 계보상으로 
<어서오세요 시네마하우스에>를 발매한 HARD의 후예입니다.
하지만, HARD에서는 보여 주지 않았던
독특한 분위기의 게임을 만들었는데
첫 게임인 for elise부터 캐치 카피가 '현실과 망상과 광기와'입니다.
미친 게임이라는 거죠.



시스템은 전형적인 명령 선택식입니다.
커맨드 개수가 지나치게 많은 게 아니기 때문에
당대 비슷한 부류의 게임들에 비해 딱히 불편하지 않습니다.
다만, 별 내용이 없어서 불필요했다는 생각은 드네요.
세이브 시점이 한정되어 있다는 것도 아쉽긴 하지만,
시대를 고려하면 특출나게 불편하다고 할 점은 아닙니다.


하지만, 2020년부터 이 게임의 다운로드판을 판매하게 되었는데
다운로드판에서 당시의 시스템을 개선하지 않은 건 잘못이었습니다.
최근 이 게임에 대해 불편하다는 평가를 많이 봤는데
2020년도에 이 게임을 플레이한 분들은
충분히 꺼낼 수 있는 불만점입니다.



주인공은 심각한 스트레스로 고생하는 회사원입니다.
거래처는 주인공의 설명도 안 듣고 욕만 하고,
원래 이 거래처를 담당했던 회사 동료는 
주인공에게 슬쩍 골치 아픈 일을 떠넘겨 버리죠.
이 과정을 얼마나 잘 묘사했는지 
제 거래처도 아닌데 거래처 사장 얼굴만 봐도 짜증이 날 정도입니다.

상사는 능력 좋고 성실하지만 깐깐한 스타일로
유능한 직원에게는 나름 좋은 상사일 수도 있겠지만
불행하게도 주인공은 멍청하면서 게으릅니다.
상사와 부하직원의 나쁜 조합 중 하나죠.



그런 주인공에게 오아시스와도 같았을 여직원인 치토세입니다.
주인공은 치토세를 남몰래 좋아하고 있지만
치토세는 동료한테 배신당하고, 상사한테 매번 깨지는 주인공을 한심하게 여기는지
쌀쌀맞은 태도로 주인공을 대합니다.
주인공은 치토세와의 이런 관계에서도 스트레스를 받을 뿐이죠.

직장 생활의 스트레스가 정말 잘 묘사된 게임입니다.
보통 이런 게임은 비현실적인 부잣집 아가씨가 나와서 
말도 안 되는 트집으로 깽판을 치는 등 현실성이 결여되어
플레이어에게 잘 와닿지 않는 경우가 많죠.

반면에 이 게임은 굉장히 현실적인 캐릭터와 일상적인 사건으로
주인공에게 감정 이입하기 쉽게 설계되어 있습니다.



이런 주인공의 스트레스 해소법은 무엇이냐?
바로 망상입니다.
매일 밤에 하는 망상 속에서
여성 캐릭터들을 괴롭히는 거죠.

상사나 동료가 여성 캐릭터였다면 정말 좋았겠지만
안타깝게도 그렇지 않기 때문에 새로운 타겟을 찾아야 합니다.

다행히도 망상에 등장시킬 여성은 얼마든지 있습니다.
주인공을 열받게 하는 여성 캐릭터들은 얼마든지 있거든요.



주인공은 외근을 농땡이 피우면서
여러 여성 캐릭터를 만나게 되는데
많은 캐릭터들이 주인공을 호구로 알고
거침없이 막말을 쏟아 냅니다.
말만 막하는 게 아니라 행동도 막하는데
주인공에게 별 애정도 없으면서 이용만 하려고 하죠.

그런 여성 캐릭터들이 망상의 피해자가 되는 겁니다.
어차피 망상이기 때문에
과격한 행위도 거침없이 할 수 있습니다.
상상은 자유 아니겠습니까?

하지만, 망상 H씬이 지나치게 가학적이고 과격합니다.
또한 내용이 너무 짧고 부실하기 때문에 
H씬 목적으로 에로게를 하시는 분들은
이 게임에 만족하기 힘들 것입니다.



주인공이 망상을 거듭하는동안 인생은 점점 고달파집니다.
주인공 근처에 꼬이는 여성들은
대부분 주인공에게 애정이 없는 막장 캐릭터들 뿐인데
그걸 본 치토세는 주인공의 여자관계가 지저분한 것으로 오해를 합니다.

치토세는 어느새 주인공의 웬수같은 동료와 단 둘이 있는 사이까지 되었죠.
주인공에게 그걸 목격당한 이후에는 아예 회사를 그만둔다고 합니다.



그렇게 계속 스트레스를 받던 주인공은
결국 현실과 망상의 경계가 무너지고,
현실에서까지 잔인한 짓을 저지르게 됩니다.

첫번째 희생자는 보육원의 교사인 노하나인데
정말 불쌍하게도 노하나는 이 게임에 얼마되지 않는 양심적인 캐릭터입니다.
예전에 한 번 도와줬던 주인공에게 보답하기 위해
집으로 초대해서 식사를 대접했는데
끔찍한 일을 당하고 말았습니다.



그 외에도 망상에 버금가는 잔혹한 짓을 저지르던 주인공 앞에
마지막으로 나타난 것은 치토세입니다.
치토세는 사실 주인공에게 그다지 악감정을 갖고 있지 않았고
방황하는 주인공을 집으로 초대하게 되죠.

주인공과 치토세는 마지막으로 인연을 맺게 되지만
이미 미쳐버린 주인공은 치토세를 죽이게 된다는 결말입니다.



이 게임은 전체적으로 완성도가 높지 않은 게임입니다.
게임이 너무 짧기 때문에 중요한 요소들이 많이 결여되어 있죠.
개연성이 많이 부족했고,
엔딩에 이르러서는 '이게 끝이야?'라는 반응이 나올 정도였습니다.
스토리를 다시 곱씹어 생각해 봐도 이해할 수 없다는 의견이 많았죠.


주인공이 광기에 이르게 되는 현실의 스트레스는 잘 표현했다고 생각하지만,
그 스트레스에서 망상으로 전환,
망상에서 현실 광기로 전환되는 묘사가 부족했어요.

애초에 광기 부류의 우울게임이었기 때문에
주인공이 상사고 동료고 여자들이고 막 복수하고 다니는 
사이다 스토리를 기대했던 건 아니지만,
미쳐버린 주인공의 행위를 본 플레이어가 
끔찍하다, 오싹하다고 느낄 정도의 반응은 이끌어 냈어야죠.

그런데 후반부가 부실하다 보니
공들여 묘사한 초반부의 스트레스는 아무 역할도 하지 못하고
진짜로 플레이어들의 스트레스가 되어 버렸습니다.


역으로 생각해 보면 부실한 묘사는
그만큼 강렬하고 충격적인 광기로 볼 여지도 있습니다.
제대로 된 이유따위는 없이 다짜고짜 미친 짓을 저지르기 때문에
주인공의 광기가 더 강조되는 거죠.
그런 방향의 묘사를 충실히 했다면 좋았겠지만
짧은 게임이었고 후반부는 더더욱 급하게 진행되었기 때문에
그렇게 받아 들였던 사람은 많지 않은 것 같습니다.



총평하자면, 생각보다 그렇게 볼거리가 많지는 않은 게임입니다.
H씬도, 광기 요소도 너무 적어서 거의 즐길 수 없었죠.

주인공을 비롯해 많은 캐릭터들이 
플레이어에게 짜증을 불러 일으키도록 설계되어 있으며,
그 짜증이 밝은 쪽으로도 어두운 쪽으로도 명확히 해결되지 않고
애매모호하게 머리 속에 남게 되는 게임입니다.

이런 게임은 본래 씁쓸한 맛으로 하는 법이지만
충격적인 결말이라기보다는 흐지부지한 결말이라는 느낌이 강하다 보니,
이도 저도 아닌 씁쓸함이었습니다.
'현실과 망상과 광기와'에서 오로지 불쾌한 현실만이 제대로 묘사되었으니
사회 고발 다큐멘터리라면 몰라도 
에로게로서는 쓸모가 없다고 할 수밖에 없네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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