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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2년 9월 4일 일요일

리뷰 : 안녕을 가르쳐줘(2001/3/2,CRAFTWORK)

* 이 리뷰는 치명적인 스포일러를 포함하고 있습니다.



<종말의 하늘>, <자살을 하는 101가지 방법>과 함께
3대 전파게임으로 불리는 <안녕을 가르쳐줘>입니다.

저는 과거에 지인으로 부터
<자살을 하는 101가지 방법>, <안녕을 가르쳐줘>,
이 두 게임은 절대 하지 말라는 경고를 들은 적이 있습니다.
경고를 잘 지켜서 <자살을 하는 101가지 방법>은 지금까지도 플레이하지 않았죠.

어떤 경위가 있었는지 기억은 안 나는데,
<안녕을 가르쳐줘>는 예전에 플레이했었습니다.
플레이 직전에는 겁을 많이 집어 먹고 플레이했는데,
사실 그렇게까지 저에게 인상깊은 장면을 남긴 게임은 아니었죠.


아무튼 꽤 많은 사람의 기억에 남은 미친 게임으로
캐치카피는 '말, 남자, 광기, 소녀, 안녕'입니다.

들은 이야기에 의하면 이 게임은 애초에
'key사의 <KANON>같은 게임을 만들라'는 지시에 의해서 제작되었다고 합니다.
그 결과물이 이 게임이라고 하니
아마도 제작자들이 <KANON>을 플레이할 때
음소거를 하고, 안대를 꼈던 것 같네요.



이 게임의 대표적인 특징 중 하나는 그래픽입니다.
캐릭터부터 배경까지 온통 씨뻘건 색으로 무장을 했는데
<KANON>을 플레이할 때, 안대가 아니라 색안경을 꼈던 걸지도 모르겠어요.

게임의 시간적 배경이 방과 후이기 때문에 노을을 연출한 것이지만
옛날에 플레이할 때는 눈이 좀 아프다는 생각이 들 정도였죠.
호불호가 많이 갈릴 그래픽입니다만,
게임의 분위기와는 굉장히 잘 맞습니다.



이 게임의 무대는 학교이며 주인공은 교육실습생입니다.
최근에 천사가 괴물에게 범해지는 악몽을 자주 꾸고 있죠.

주인공은 늘 방과 후를 양호실에서 시작합니다.
흡연 장소가 제한되어 있는 학교에서 양호실은 자유로우며
담배친구인 양호선생님과 매일 같이 맞담배를 피웁니다.

양호선생인 토나에는 주인공에게 많은 상담을 해줍니다.
점점 미쳐가는 주인공의 심리 상태를 정리해 주는 역할을 맞고 있죠.



하루의 마무리는 교육실습일지입니다.
주인공은 실습생이 된지 얼마 되지도 않았는데
왠지 교육실습일지가 오래 전부터 써왔던 것같은
익숙한 느낌을 받습니다.

주인공의 담당교사인 세미나는 굉장히 히스테릭한 성격이죠.
갑자기 '내가 누구 때문에 이 고생을 하는데'하고 급발진을 할 때도 있습니다.
너무 갑작스러워서 뭐 때문에 화가 났는지 이해할 수가 없어요.
누가 고생하라고 칼들고 협박이라도 했나 하는 생각도 듭니다.



양호실과 일지의 중간에 하는 일은
학교를 돌아다니며 여학생과 대화를 나누는 일입니다.
처음에는 평범한 대화를 나누는데
날이 갈수록 다들 점점 이상해집니다.


여학생들이 아무 이유 없이 옷을 다 벗고 있고,
주인공은 그에 대해서 별로 이상하게 생각하지도 않으며
다짜고짜 H씬이 시작됩니다. 

심지어 어떤 때는 여학생들이 사망까지 하는데
다음날 멀쩡히 살아 있고,
주인공도 여학생도 어제 사망 사건에 대한 언급이 전혀 없습니다.



주인공의 정신상태는 불안정하며,
주변 인물들로 자꾸 망상을 하는 겁니다.
문제는 터져 나오는 사건들이 워낙 갑작스러워서
어디까지가 망상이며, 어디까지가 현실인지
구별이 불가능한 수준이라는 거죠.



꿈 속에 나오는 천사를 닮은 소녀 무츠키입니다.
주인공은 그녀에게 무언가 신성함을 느끼고 있죠.

양호선생이 주인공에게 '무츠키가 네가 말한 그 천사냐?'라는 질문을 합니다.
여기서 선택지가 뜨는데,

1) 절대 아니다
2) 그녀는 천사이면서 천사가 아니다
3) 그건 내 지나친 망상이다

셋 중 하나를 고를 수 있죠.
하지만, 무엇을 고르든 대답은
'네, 그녀가 제가 경외하는 천사님입니다'가 됩니다.
주인공이 선택지와 달리 행동하죠.
안 그래도 미친 게임이 본격적으로 달리는 중요한 변곡점입니다.



이 게임에서 눈여겨 볼 부분은 바로 연출입니다.
게임을 플레이하면 할수록 학교종 소리가 탁해지면서
캐릭터, 배경, 텍스트가 서로 매치가 안 되고,
똑같은 장면이 계속 반복되기도 하며,
대사가 중첩되어 나오기도 합니다.



마히루를 양호 선생에게 소개할 때는
'마히루는 내가 전에 한 번 죽였던 소녀'라고 아무렇지도 않게 이야기합니다.
주인공은 점점 자신이 무슨 얘기를 하고 있는지도 모르는 게 되는 겁니다.
망상은 점점 심해져만 가죠.



학생 다섯 캐릭터의 스토리가 있지만
엔딩은 똑같습니다.
주인공 담당 선생과 양호 선생이 진상을 알려주는 대화를 나누는 거죠.

어디부터 어디까지가 망상이었는가를 알려주는 해설인데
사실 통째로 망상이었습니다.
아예 주인공은 교육실습생조차 아니에요.
정신분열증 환자였던 겁니다.
양호 선생 토나에는 정신과 의사였고, 세미나는 주인공의 누나였죠.

둘의 대화에서 다른 소녀들의 정체도 밝혀집니다.
주인공은 까마귀나 고양이, 표본이나 인형 같은 것들과
자주 대화하려고 했다고요.
그런 것들이 주인공에게 미소녀로 보였을 뿐만 아니라,
미소녀에 여러 캐릭터성이 투영된 것도
주인공의 과거 및 정신상태와 관련이 있습니다.


진상을 전부 이야기하면 훨씬 더 복잡하지만,
어쨌든 충격적인 반전이었고
다시 플레이하면 복선도 꽤 충실히 깔려 있습니다.



많은 에로게가 광기의 분위기를 다루기 힘들어 했으나
이 게임은 확실하게 광기를 표현하는 것에 성공했습니다.
이 게임이 활용한 다양한 연출들도 스토리가 뒷받침되지 못했다면
그 무게감이 떨어지고 싼티나는 표현들로 보였겠죠.
분위기와 연출의 밸런스가 잘 맞는 게임입니다.

어설프게 해피엔딩을 만들지 않고 
절망이 또다시 반복되는 암시를 주는 엔딩으로 만든 점도 마음에 듭니다.


다만, 그에 대한 반작용으로 미소녀 에로게로서는 아쉽습니다.
화사한 미소녀가 등장하는 광기 게임이 아닌
철저하게 광기 밖에 없는 성인 게임을 하겠다는 목적으로만
플레이할 게임이라고 생각됩니다.



총평하자면, 결말이나 내용을 대충 기억하고 있었기 때문에
게임에서 활용한 기교나 구조 등을 중심으로 플레이해 봤는데
상당히 훌륭했다는 건 인정할 수 밖에 없었습니다.

정신없이 진행되는 것 같으면서도 복선을 정교하게 깔아두었고,
주인공의 복잡한 심리상태를 잘 묘사했으며,
광기 요소를 폭발시킬 타이밍에 화려한 연출을 보여주었죠.


개인적으로는 그다지 좋아하지 않는 게임입니다.
장르 자체가 저하고 맞지 않았죠.
철저하게 한 방향으로만 파고 든 작품이기 때문에
제 마음에 들 요소는 보이지 않았습니다.

좋은 점이 있다는 건 인정하지만
다시 플레이하고 싶지는 않고 다른 사람에게 추천하고 싶지도 않습니다.
제 이런 감상이 게임의 의도에 부합하는 걸지도 모르겠네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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