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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3년 2월 12일 일요일

리뷰 : 란스 퀘스트(3)(2011/8/26,앨리스소프트)

* 이 리뷰는 치명적인 스포일러를 포함하고 있습니다.



제가 이번 리뷰를 위해 란스 퀘스트를 다시 막 시작했을 때의 이야기입니다.
저는 이 게임을 거의 마우스로 조작을 했습니다만
RPG모드에서 캐릭터 이동을 할 때는 키보드를 사용했죠.

근데 마침 제 무선 키보드가 제대로 작동이 안 하는 겁니다.
건전지가 거의 방전이 되어 버린 것이죠.
이동하다가 적을 만나 전투를 하고 다시 이동하려고 하면
키보드가 동작을 하지 않았습니다.
무선 키보드를 한 번 끄고, 다시 켜면 잠시 작동하는 방법으로 플레이를 했죠.

전투가 상당히 많은 게임인데,
전투할 때마다 키보드 전원을 끄고, 켜고를 반복하니 얼마나 짜증이 났겠습니까?
다음날 저는 당장 건전지를 사와서 키보드를 수리했죠.

근데 키보드를 수리했어도, 여전히 짜증이 나는 겁니다.
그 때 깨달았습니다.
제가 짜증난 이유는 키보드가 아니라 이 게임에 있었다는 사실을 말이죠.

제가 이 게임을 싫어하는 것은 이 정도입니다.
게임 도중에 키보드가 되다 안 되다 하는 수준으로 싫어하죠.
보통 이 정도로 싫어하는 게임이라면 
장점이 한, 두 개쯤 있더라도 저에게는 잘 보이지 않습니다.
욕하기에도 바쁜데 장점 찾을 시간이 있겠습니까?


하지만, 이 게임은 그렇지 않았습니다.
장점이 너무나도 확연했기 때문이죠.



이전에 설명했듯이, 카라의 여왕 파스텔은
란스에게 '금욕 모루룬'이라는 조건부 고자가 되는 저주를 걸었습니다.
파스텔이 란스를 충분히 죽일 수 있었음에도 그렇게 하지 않은 이유는 
카라의 관습 때문입니다.
'아이가 예상치 못한 불상사로 태어났다면,
그 아이가 아버지를 죽이는 것으로 오명을 씻는다'는 규칙이죠.

다시 말해 파스텔은 란스에게 당해서 여자 아이를 하나 낳았고,
파스텔이 란스를 죽이지 않은 이유는 그 아이가 직접 란스를 죽이게 하기 위해서였던 거죠.



란스와 파스텔의 딸, 리세트 카라입니다.
인간이 아니기 때문에 몇 달만에 쑥쑥 성장했습니다.
한 살임에도 불구하고 몇 살은 먹은 어린이처럼 보입니다.

란스의 딸답게 레벨 제한이 없는 무한한 재능을 지녔으며
'크라우젠의 손'이라는 싸대기를 때리면 맞은 사람이 제정신을 차리는
특수한 능력까지 지니고 있습니다.


게임 후반부에 들어서면 란스와 리세트가 만나는 장면이 있습니다.
파스텔은 리세트가 란스를 죽이도록 열심히 판을 깔아놨지만,
리세트가 보기에 란스는 아무리 봐도 나쁜 악당이 아닙니다.
오히려 아버지를 마음에 들어하죠.



파스텔은 중간에서 속터지지만 어쩌겠습니까?
리세트는 이미 란스성을 제 집 드나들듯이 다니며 란스와 친해졌는데요.
란스도 처음에는 갑자기 생긴 딸을 인정하지 않았지만 이내 친해집니다.



리세트가 너무 귀여워요. 웃는 모습은 란스하고 판박입니다.
저를 실망시킨 이 게임의 수많은 단점을 전부 상쇄할 수는 없었지만
그래도 리세트가 제 분노를 많이 누그려뜨렸습니다.
제 기대대로 치트키였던 거죠.



이쯤에서 주목해야할 캐릭터가 바로 크룩입니다.
란스 세계관에는 'AL교'라는 널리 퍼져있는 종교가 있는데
크룩은 AL교의 사교로서 교단에서 꽤나 높은 지위를 차지하고 있는 캐릭터죠.

AL교는 지금 '법왕'이라는 종교 지도자를 뽑는 중입니다.
크룩을 포함한 네 명의 사교가 법왕이 되기 위해 경쟁중이죠.
'밸런스 브레이커'라는 세계를 어지럽히는 아이템을 회수하는 등
업적을 충실히 쌓으면 법왕이 될 수 있습니다.
무신경한 크룩은 법왕이 되고 싶은 욕심이 크지 않습니다.
다만, 자신의 역할을 다하기 위해서 밸런스 브레이커를 회수할 뿐이죠.


여전히 란스에게 복수할 생각인 파스텔은
카라의 보물인 3신기를 꺼내는데,
3신기가 밸런스 브레이커였기 때문에 크룩이 빼앗아 회수하게 됩니다.

3신기는 카라족의 안보에 관련되어 있었던 중요한 아이템이었고,
3신기가 없어진 카라족은 마을 위치를 숨길 수 없어 헬만의 침략을 받게 됩니다.
무수한 카라들이 학살을 당하게 되죠.



이 카라의 위기를 구해준 것이 란스였으며,
많은 카라의 백성들이 란스를 영웅으로 떠받들게 됩니다.
파스텔 입장에서는 더더욱 속터지는 상황이 된 거죠.

파스텔은 자살까지 생각하게 되는데,
단순히 란스 때문은 아니고 자신 때문에 많은 카라족이 학살된 영향이 큽니다.



자살하기 직전에 나타난 파스텔의 조상 귀신들이
파스텔의 몸을 빼앗고, 리세트를 납치하여 란스를 시험합니다.
란스가 파스텔의 조상 셋을 격파하고 
파스텔의 몸을 되찾아 주는 것으로 사건은 종료됩니다.



그리고 마지막 장면, 얼어붙은 실의 저주를 녹이는 장면입니다.
어쨌든 이래저래 란스의 신세를 진 파스텔이 결국 저주를 풀어주기로 한 거죠.

근데, 택도 없습니다.
제 아무리 카라의 여왕이라도 
훨씬 상위 존재인 마왕의 저주를 풀 수는 없었던 거죠.

단순히 파스텔이 저주를 못 풀었다는 게 중요한 게 아닙니다.
파스텔은 인간계 최고의 저주 전문가로
'자신이 못 풀면 이 저주는 그 누구도 풀 수 없다'고 못을 박아 버린 거죠.
어쩔 수 없이 그냥 금욕 모루룬만 풀어 줍니다.

크게 상심한 란스는 거의 폐인이 되어 버리고,
보다 못한 리어 공주가 총대를 메고
'헬만국의 보물창고에는 마왕의 저주도 풀 수 있는 아이템이 있다 카더라'라는
조작된 정보를 흘립니다.
다시 활력을 되찾은 란스가 헬만으로 떠나는 것으로 게임이 마무리되죠.
 


란스 퀘스트는 정말로 스토리가 부실하기도 했지만,
체감상으로는 더더욱 부실하게 느껴습니다.
그 이유는 열심히 뿌렸던 떡밥을 
제대로 해소하지 못한 측면이 컸기 때문입니다.

파스텔, 리세트에 관련된 스토리는 어떻게든 마무리지었지만,
기껏 등장시킨 마인 카이트는 제대로 활용도 못했고,
크룩의 법왕 선출도 간만 보다 끝났으며,
오염인간 문제도 확실한 결말을 내지 못했죠.

이런 부분의 스토리를 보강하기 위해서
발매된 것이 바로 <란스 퀘스트 매그넘>입니다.
시스템의 수정도 많았지만 이건 굳이 매그넘이 아니라도 패치를 통해 계속 수정되는 부분이었고,
부실했던 스토리와 H씬을 보강하기 위한 측면이 더 컸다고 봅니다.



매그넘에서 가장 중요한 주제는 크룩의 법왕 선출 이벤트입니다.
마인 카이트도, 오염인간도, 그리고 란스 세계관의 가장 중요한 비밀도
이 이벤트와 연결되어 있죠.

말씀드렸다시피, 크룩은 법왕이 되는 것에 그렇게 적극적이지 않았습니다.
경쟁자들 중 욕심 많은 후보가 두 명 있는데,
다들 크룩이 당선될 확률은 거의 없다고 생각하고 있죠.

하지만 법왕을 뽑는 것은 어디까지나 여신 ALICE가 하는 일입니다.
그리고 놀랍게도 중간조사에서 법왕이 될 확률이 가장 높은 건 크룩이었죠.



발등에 불이 떨어진 경쟁자는 비겁한 짓을 써서
크룩을 강제적으로 후보에서 탈락시키려고 합니다.
란스가 나타나 크룩을 구해주고, 결국 크룩이 법왕이 된다는 결말입니다.

하지만, 의문은 남습니다.
밸런스 브레이커 회수 업적이 압도적으로 좋았던 것도 아니고,
교단의 지지도 부족했던 크룩이 어째서 여신 ALICE의 선택을 받은 걸까요?



그것은 란스 세계관의 가장 중요한 비밀과 관계되어 있습니다.
여신 ALICE는 자애로운 여신이 아닙니다.
여신 ALICE는 오직 법왕과만 독대하는데 별 것 아닌 대화에도
기분 나쁘면 법왕을 살해하고 다시 부활시키기를 반복하죠.

애초에 모든 신들이 자애롭지 않습니다.
여신 ALICE는 1급신이기는 하지만 여신 ALICE보다 더 높은 신도 많이 있죠.

가장 지위가 높은 신은 창조신 루드라사움입니다.
<귀축왕 란스>에서도 최후반부에 잠깐 나왔던
창조신 루드라사움의 유일한 목적은 바로 꿀잼입니다.
이 세상을 창조한 이유 자체가 심심했기 때문이죠.

창조신 루드라사움의 취향은 고약하기 짝이 없는데
그의 기준에서 꿀잼이란 전쟁, 파괴, 혼란, 학살 등입니다.
<귀축왕 란스>에서 란스가 마인까지 모두 통일하면
루드라사움이 평화가 싫다면서 세계를 멸망시키려고 하죠.

정리하면, 창조신 루드라사움의 뜻을 받드는 여신 ALICE는 법왕에게 명령하여 
이 세계가 파괴와 혼란으로 충만하도록 조절하는 역할인 겁니다.
크룩이 법왕이 되었던 결정적인 이유도,
3신기를 훔쳐서 카라족들이 무고하게 학살되는 꿀잼 이벤트를 초래한 덕분이었죠.



이런 신들의 횡포를 저지하기 위해,
인간들을 오염시키는 암 이스엘이 매그넘의 최종보스입니다.
수단과 방법을 가리지 않는 잔인함으로
마인 카이트조차 오염시키게 되죠.
당연하지만 결국 란스의 활약에 의해 저지됩니다.



마지막 장면에서 란스가 폐인이 되는 장면은 스토리상 폐기되었습니다.
매그넘의 결말은 크게 달라졌는데,
마법 증폭장치까지 사용한 파스텔이 
한 번은 얼어붙은 실을 녹이는 것에 성공하게 되죠.

다만, 얼마되지 않아 다시 얼어 버립니다.
그래도 잠시나마 실과 재회해 좋은 시간을 보냈기 때문인지
란스는 상심하지 않고 '또 녹이면 되지'라고 웃으며 말합니다.
크룩이 여신 ALICE가 어떤 소원이든 딱 한 번 들어주는 
'법왕 특전'을 사용하면 실을 녹일 수 있다고 하지만 
란스가 아껴두라고 할 정도죠.

매그넘의 엔딩은 좀 더 희망적인 분위기로 바뀌었습니다.
란스의 실에 대한 감정을 적극적으로 드러냈던 엔딩도 나쁘지 않았다고 생각하지만
IF 스토리가 되고 말았죠.



총평하자면, 처음에 비해 정말 많은 점이 개선된 게임이지만
최종 버전까지도 완전히 만족할 수 없었던 게임이었습니다.
요구하는 노가다는 지나치게 심했고,
모든 단점이 개선되기에는 단점이 너무 많은 게임이었죠.

다만 내용이 부실하다고 생각했던 점은 매그넘에서 확실히 개선이 되었고,
8편에서 뿌린 떡밥은 시리즈 전체에 매우 중요한 복선이기도 합니다.
8편을 넘긴다면 최종장의 감동이 많이 줄어들지 않을까 하는 생각도 드네요.
시리즈 팬이라면 빼놓을 수 없는 게임입니다.

1편부터 10편까지 다시 플레이하라고 했을 때,
가장 다시 하기 싫은 게임으로 저는 8편을 꼽겠습니다.
리세트만이 유일한 위안인 게임이었네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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