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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0년 4월 13일 월요일

리뷰 : 웨딩 에란트리 ~역옥왕~(1994/12/9, 그로서)

* 이 리뷰는 치명적인 스포일러를 포함하고 있습니다.



이번에 소개할 게임은 그로서의 <웨딩 에란트리 ~역옥왕~>이라는 RPG입니다.



스토리는 주인공이 여자에게 차이고 뺨부터 맞고 시작합니다. 
주인공은 우유부단하고 한심한 성격으로 여자에게 차이는 게 일상인 청년입니다.
검술이나 마법같은 것도 공부한 적 없는,
기존의 RPG주인공과는 전혀 관계없는 일반 소시민일 뿐이죠.



그러던 어느 날, 왕국의 모든 총각에게 공주의 신랑감을 공개 모집한다는
초대장이 발송됩니다.
공주의 사위가 되는 조건은 궁정 마도사가 만든 '멋진 남자 양성 던전'을 제패하는 겁니다.
그 던전은 멋지고, 듬직하고, 강하고, 'H를 잘하는' 남자를 양성하는 던전입니다.

주인공같은 소시민은 당연히 공주와의 결혼은 꿈도 꾸지 못할 일이지만
'H를 잘하는 남자를 뽑는다' = '던전에서 H한 이벤트가 있을 것이다'라는
다소 불순한 이유로 주인공은 공개 모집에 참여합니다.



그런 주인공에게 희대의 운빨이 터지는데
1000번째 참가자에 당첨되어 공주의 키스를 받게 됩니다.
공주는 애초에 포기하고 H씬이나 누리려던 주인공은
진짜로 공주에게 반하게 되고 던전 제패를 위해 노력한다는 내용입니다.


문제는 주인공이 마음먹었다고
금세 멋있고 듬직한 전사가 될 수 있는 건 아니라는 거죠.
심지어 장비도 없어서 경비원이 던전에 들여 보내주지도 않습니다.
게다가, 무기점에 가보니 무기가 다 품절됐다고 합니다.



어쩔 수 없이 근처 식당에서 국자하고 냄비나 빌려서 장비하게 됩니다.
던전 앞을 지키던 경비원은 국자, 냄비로 장비한 주인공이 안쓰러웠는지
그냥 들여보내 줍니다.

던전에 본격적으로 들어가고 나서 필드형 RPG가 시작되는데
난이도가 말도 못하게 어렵습니다.

잡몹이라도 잡아야 경험치라도 얻을 텐데 첫 몹을 잡을 수가 없어요.
잡을 수 없는 정도가 아니에요.
대미지가 1밖에 안 들어갈 뿐더러
그마저도 명중률이 낮아서 제대로 들어가지도 않습니다.

결국 주인공은 도망만 다니다 지하 1층의 가디언에게 패배하고
참가자격까지 잃어버리게 됩니다.

굉장히 현실적입니다.
사실 아무리 잡몹이라도 국자와 냄비같은 걸 장비한 마을 사람에게
패배한다는 건 말이 안 되죠.
그래도 이건 게임이잖아요. 난이도가 너무나도 미쳤습니다.



가디언에게 패배하고 정신을 잃은 주인공은 눈을 떠보니
공주의 방에서 깨어나게 되고,
공주는 주인공이 마음에 들었는지 다시 한 번 참가자격을 줍니다.

공주의 호의에 감동해서 다시 한 번 도전해 봤지만,
여전히 잡몹을 쓰러뜨리는 것도 버겁습니다.
뭐, 이딴 게임이 다 있어라고 욕하고 포기하기 딱 좋은 게임입니다.



사실 이 게임은 다른 RPG와 똑같은 방식으로 접근해서는 안 되는 게임입니다.
이 게임의 핵심은 레벨이나 경험치가 아니라 바로 칼로리입니다.
잘 먹고, 운동 열심히 하면 근력이 붙고 그게 주인공의 스탯을 올려주는 거죠.
운동량과 칼로리를 적정 기준에 맞춰 유지하면 주인공이 성장하게 됩니다.

전투 한 번 제대로 안 되는데 운동은 어떻게 하느냐?
던전에서 걸어다니면 됩니다.
그러니까 초반에는 싸울 생각일랑 말고, 도망만 계속 다니고
던전에서 계속 걸어다니면서 칼로리 소모로 기본 스탯을 올려야 하는 겁니다.

운동을 너무 많이 하면 오버워크가 되어 오히려 안 좋습니다.
칼로리 섭취도 너무 많이 하면 주인공이 살 찝니다.
주인공 몸매는 S, M, L, LL 사이즈가 있으며, 몸매에 따라 맞는 갑옷도 따로 있습니다.
게다가, 살이 찌면 온 마을 사람들이 살쪘다고 주인공에게 한 마디씩 합니다.
심지어, 공주까지 주인공을 구박하죠.
주위의 잔소리가 듣기 싫어서라도 꼭 적정 체중을 유지해줘야 합니다.



칼로리 섭취는 식당에서 합니다.
식당에는 자리가 부족한지 늘 다른 사람과 합석을 해야하는데
합석 상대는 주로 주인공의 라이벌인 페르난도입니다.



페르난도는 첫 인상 그대로 재수없는 라이벌 포지션입니다.
게임이 진행되면서 주인공과 자주 전투하고 거듭 패배하는데
마지막에는 그래도 주인공을 인정하는 모습을 보여주기도 합니다.
최후의 전투에는 파티원으로 합류하기도 하죠. 도움은 전혀 안 되지만요.



던전에서 만난 유리라는 여전사입니다.
국자와 냄비로 무장한 주인공을 보고 경멸하는 눈빛을 숨기지 않습니다.
그런 꼴로 공주와 결혼이 목표라고 하니 한심해 할 만도 합니다.
전투를 하는데, 잘 먹고 운동을 열심히 했다면 쓰러뜨리는 건 어렵지 않습니다.



식당에 가서 식사를 하면 이번엔 유리와 합석을 하게 됩니다.
국자따위에 패배한 것만해도 짜증나는데 장본인이 앞에서 신나게 밥먹고 있으니
얼마나 성질이 뻗치겠습니까?
제 취향을 저격하는 시츄에이션입니다.
유리가 울분을 꾹 참고 있는 모습이 정말 마음에 들어요.

유리 역시 모험 내내 주인공과 티격태격하지만
마지막에는 주인공을 인정하고 주인공을 사랑하게 되죠.



아무튼 주인공은 계속 던전을 탐험하면서,
점점 강해지고, 여러 여성과 좋은 관계가 되기도 합니다.



공주와 같이 탐험을 떠나기도 하면서 공주와도 사랑을 나눌 정도의 사이가 됩니다.
한심한 인생을 살던 주인공이 그야말로 승리자가 되어 버린 겁니다.



계속 던전을 모험하다 보면,
주인공의 동향을 신경쓰면서 이제 슬슬 행동할 때가 되었다는
흑막이 나타납니다.
그리고 빛이 바뀌더니...



흑막은 바로 공주님이었던 겁니다.
무시무시한 반전입니다.
얼마전까지만 해도 주인공과 사랑을 나누더니
어떻게 이렇게 갑자기 돌변할 수가 있죠?



사실 그녀의 정체는 공주가 아니라,
궁정마도사이자 공주의 숨겨진 쌍둥이 여동생입니다.
최후반부에서 궁정마도사는 공주를 납치하고,
주인공은 페르난도, 유리 그리고 피즈라는 여마술사와 힘을 합쳐
공주를 구하러 갑니다.

주인공과 대치한 궁정마도사는 진짜로 충격적인 마지막 반전을 주인공에게 들려줍니다.
'찌질한 너를 공주가 진짜로 사랑하는 줄 알았냐.
모든 것은 마법의 힘이었다. 나를 쓰러뜨리면 모든 마법이 풀릴 것이고
너는 모든 여성들의 사랑을 잃고 찌질했던 옛날의 모습으로 되돌아갈 것이다.'
맨 처음 이벤트로 당첨되어 받았던 공주의 키스가 바로 마법이었던 겁니다.

주인공은 큰 충격을 받아 망설이게 되고
페르난도와 피즈는 그 사이에 궁정마도사에게 당해 버립니다.

주인공에게 있어 옛날의 아무 능력도 없고 여자에게 차이기만 하던 시절은
그만큼 큰 트라우마였습니다.
마지막으로 남은 유리는 망설이는 주인공을 설득하려고 합니다.

주인공은 과연 과거를 극복하고 공주를 구해낼 수 있을까요?
결말은 뻔히 정해져 있습니다. 하지만, 제 리뷰는 여기까집니다.



이 게임의 가장 재미있는 부분은 주인공의 성장입니다.
처음의 주인공은 장비가 없어 국자와 냄비를 장비하고,
싸움을 못 해서 도망이나 다니고, 던전이나 걸어다니면서
근근이 운동이나 겨우 하던 신세였습니다.
많은 사람들이 주인공을 한심하게 생각했죠.

하지만, 주인공은 던전을 탐험하며 성장하게 됩니다.
그 찐따같던 주인공이 맞나? 라고 생각될 정도로
멋있고 듬직한 왕도 RPG 주인공이 되는 거죠.
그야말로 '멋진 남자 양성 던전'답습니다.

처음 게임을 플레이해서 시스템에 적응 못 했을 때는 시스템이 별로라고 생각했지만,
그 때 그렇게 고생했기 때문에, 주인공의 성장에 더더욱 감정을 이입할 수 있었던 것 같습니다.



마지막 엔딩입니다.
주인공의 몸매에 따라 엔딩 CG가 바뀝니다.
정말 억울하게도 게임 내내 몸매 잘 유지하고 있었는데,
최후반부에 이벤트때문에 살 뺄 기회를 놓쳐 버렸습니다.
갑자기 던전이 폐쇄돼 버리는 겁니다, 글쎄.

엔딩에서마저 공주에게 살 빼라고 한 소리 들었습니다.


총평하자면, 매력적인 캐릭터, 흡입력 있는 스토리, 독특한 시스템 등이
잘 어울리는 멋진 게임입니다.

운동량이 실시간으로 보이지 않는 등 세세한 부분에서 시스템이 좋지 않았고,
설치가 이상하게 되는 문제도 있어서 당대에 평가가 많이 깎였다는 이야기도 있지만
적어도 저에게는 게임이 끝난 후, 좋은 기억밖에 남지 않았던 게임입니다.

리메이크가 되었다면 강력하게 추천했을 게임입니다만
아쉽게도 윈도우로 그대로 이식된 것 이외에 리메이크는 없었습니다.

PC-98판은 불편한 점도 많기 때문에 추천하기에 망설여집니다.
제 좋은 추억으로만 간직하고 추천은 하지 않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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