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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0년 4월 19일 일요일

리뷰 : PURE2(1990/12/20, 퀸소프트)

* 이 리뷰는 치명적인 스포일러를 포함하고 있습니다.



퀸소프트의 <PURE2>입니다.
90년대 초반에 꽤나 화제가 되었던, 당대를 대표하는 쓰레기 게임이죠.



스토리는 주인공이 폐부 위기에 빠진 축구부를 구하기 위해 노력한다는 내용입니다.
축구부는 부원이 없기 때문에 폐부를 걱정할 처지에 놓였고
주인공은 그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서 이쁜 매니저를 영입하기로 합니다.
이쁜 매니저가 있으면 부원들이 알아서 찾아올 거라는 얘기죠.



그러던 도중, 잃어버린 책 찾는 일도 하게 되고 아무튼 스토리는 별 거 없습니다.
별 내용없이 학교를 돌아다니는 내용일 뿐이지만,
사실 이 시기에 이런 무의미한 게임들은 넘쳐났습니다.
다른 게임에 비해 큰 문제가 있는 스토리는 아니라는 거죠.

시스템상 불편한 점, 두 가지만 짚고 넘어갑시다.



첫 번째로 짜증나는 부분은 대사 페이지를 넘기는 키와
커맨드를 선택하는 키가 완전히 분리되어 있다는 점입니다.

초기 퀸소프트 게임에서 자주 보이는 문제죠.
대사 페이지를 넘길 때는 키보드의 스페이스 바를 눌러야 하고
커맨드를 선택할 때는 키보드의 엔터 키를 눌러야 합니다.
반대로 누르면 게임이 미동도 없어요.

다른 게임같은 경우는 방향키와 엔터키만 눌러도 게임을 진행할 수 있는데
이 게임은 왜 이렇게 만들었는지 이유를 알 수가 없습니다.



또 다른 문제점은 쓸데없는 커맨드가 꽤 많은 편이라는 점입니다.
특히 '생각한다'의 커맨드가 너무 많아요.

명령 선택식 게임의 경우는 게임 진행이 한 번 막히게 되면
모든 커맨드를 전부 눌러보는 방법을 써야 하죠.
어떤 커맨드를 선택하지 않아서 진행이 안 되는지 모르니까요.

보다, 듣다, 말하다 이런 게 많은 것도 짜증나기는 합니다.
하지만 이것들은 개수라도 적죠.
'생각하다'의 커맨드는 열 몇 개가 됩니다. 게다가 그 중 열 몇 개가 쓸모없죠.
그리고 문제는 그 열 몇 개의 생각이
각 장소마다 할 수 있도록 되어 있다는 겁니다.

축구부실에 가서 '부원'에 대해 생각하고, '선생'에 대해 생각하고, 누구누구에 대해 생각하고...
도서실에 가서 '부원'에 대해 생각하고, '선생'에 대해 생각하고, 누구누구에 대해 생각하고...
체육관에 가서 '부원'에 대해 생각하고, '선생'에 대해 생각하고, 누구누구에 대해 생각하고...
양호실에 가서 '부원'에 대해 생각하고, '선생'에 대해 생각하고, 누구누구에 대해 생각하고...
수영장에 가서 '부원'에 대해 생각하고, '선생'에 대해 생각하고, 누구누구에 대해 생각하고...
시청각실에 가서... 샤워실에 가서... 꽃꽂이 부에 가서... 

이게 무슨 데카르트인가요? 나는 생각한다, 고로 존재한다는 겁니까?
생각이 너무나도 많습니다. 
어차피 한 사람이 하는 생각이야 다 비슷비슷 할 텐데, 
장소마다 '생각한다' 커맨드를 만들 필요는 없잖아요.

게임 진행에 있어서 저 많은 커맨드를 일일히 다 눌러보는 경우가
많지는 않을 수도 있습니다. 저도 정확히는 모릅니다.
하지만, 적어도 제가 플레이할 때는 게임 진행이 자주 막혔고,
저걸 다 안 누르고 어떻게 해보려고 했지만 도무지 게임이 진행되지 않았습니다.


근데, 고작 이 정도라면 이 게임이 90년대 초반 대표 쓰레기 게임이라고 불리지는 않았겠죠.
왜냐면, 90년대는 이 정도의 불편함을 강요하는 게임이 넘쳐나는 시대였습니다.

늘 말하지만, 이런 식으로라도 플레이타임을 늘리는 게 미덕이라고 생각했던 시대였죠.
따라서, 이 게임은 좀 과하기는 하지만 그렇다고 독보적이라고 볼 수는 없습니다.


그렇다면, 이 게임은 대체 왜 그렇게 유명한 쓰레기 게임이 된 걸까요?
저도 궁금하네요.
지금까지 90년도의 쓰레기 게임 <PURE2>에 대해서 알아보았습니다.













이렇게 리뷰를 끝내버리면 바로 알맹이 없는 리뷰가 됩니다.
그리고, PURE2가 욕먹는 이유도 이와 같습니다. 알맹이가 없는 거죠.

다른 게임과 달리 PURE2는 
커맨드를 선택하면서 열심히 고생한 것에 대한 보상이 없습니다.
쉽게 말해, 스토리 내내 H씬이 없는 겁니다. '에로 없는 에로게'인 거죠.

게임내에 야한 CG가 아예 없는 건 아닙니다.
게임이 전부 끝나고 엔딩을 보는 시점에서,
'그녀들은 어떻게 됐을까?'하고 대사 하나 없이 야한 CG가 슉슉 지나가고 끝입니다.

당시 플레이한 사람들은 이런 게임일 거라고는 전혀 예상하지 못하고
야한 장면을 보겠다는 일념하에 열심히 '생각한다' 커맨드를 눌러가며 고생을 했겠죠.
보상은 마지막에 적선하듯이 던져준 CG 몇 개따위가 전부였습니다.
이 게임이 트라우마가 됐다는 사람도 있어요.


놀랍게도, 사실 복선은 존재했습니다.
제목을 보세요. PURE입니다. 순수한 게임이라 H씬 따위는 없는 겁니다.

이름값을 톡톡히 하는 게임입니다.
젊고 순수하니 해놓고 고전 에로게나 리뷰하는 블로그에 비해
이 얼마나 정직한 게임입니까?

문제는 금도끼 은도끼도 아니고 사람들이 원한 건 정직함이 아니었다는 거죠.
게다가, 전작 <PURE>는 그냥 평범한 에로게였습니다.
이 게임이 이런 사기를 치리라고는 아무도 예상을 못 했고,
낚인 사람들의 분노는 엄청났습니다.

퀸소프트는 이후로도 많은 게임을 냈지만,
PURE2를 발매한 회사라는 오명을 벗기까지는 상당히 오랜 시간이 걸렸고,
94년도에 <포제셔너>가 발매되고 나서야
비로소 회사의 대표 게임을 바꿀 수 있었습니다.



총평하자면, 에로게의 역사를 오래 지켜본 분들은 알고 계실 겁니다.
몇 년에 한 번씩 이런 미완성 작품이 발매됩니다.

CG의 양이 어처구니 없을 정도로 적다든가,
H씬 장면에서 갑자기 화면이 까매진다든가,
캐릭터 중 몇 명은 예고도 없이 공략 불가라든가,
이런 게임들이 간간이 나오고 있죠.

미완성 게임들은 그 어떤 쓰레기 에로게보다도 욕을 많이 먹었고,
요즘은 발매 연기를 해서라도 최대한 그런 문제를 일으키지 않으려고 합니다.

PURE2가 욕먹은 현상도 지금 보면 그렇게까지 특이한 경우는 아닙니다.
하지만, 당시에는 이런 사기를 치는 게임이 많지 않았고
PURE2는 대표적인 사기게임이 되어 버린 거죠.

30년이 지난 오늘날에는 낚시 여부를 떠나
플레이하는 게 시간낭비인 게임입니다.
전혀 추천하지 않고, 이런 쓰레기 게임이 있었다는 사실만을 기록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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