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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0년 7월 27일 월요일

리뷰 : 키즈아토(1996/7/26, Leaf)

* 이 리뷰는 치명적인 스포일러를 포함하고 있습니다.
추천하는 게임입니다.



리프 비주얼 노벨 제2탄 <키즈아토>입니다.
PC-98과 윈도우즈판으로 96년도에 발매되었고
2002년에 그래픽을 새로이 하여 리뉴얼판이 발매되었으며,
2009년에 다시 그래픽을 갈아 엎고 리메이크되었습니다.



화면 전체를 덮는 텍스트, 선택지 방식의 멀티 엔딩 등
시스템 자체는 시즈쿠와 전혀 차이점이 없다고 봐도 무방합니다.


스토리는 이렇습니다.
오랫동안 아버지와 인연을 끊고 살던 주인공은
아버지가 사고사한 소식을 듣고 잠시 시골로 내려가게 됩니다.
주인공은 아버지와 함께 살던 네 자매와 한동안 함께 지내게 되는데,
매일 밤마다 자기 몸속에 숨어있는 사악한 무언가의 유혹과 싸우는 꿈을 꾸게 됩니다.

꿈 이외에는 네 자매의 귀여움과 함께하는 평화로운 시골 스토리입니다.
아버지의 사고사에 의문을 품은 형사들이 등장하긴 하지만
그 이외에는 큰 문제는 없습니다.



네 자매 중 차녀 아즈사의 후배 카오리와 만난 주인공은
꿈이 아닌 현실에서 갑자기 누군가의 목소리를 듣게 됩니다.
그대로 정신을 잃어버리고 쓰러진 주인공은 꿈을 꾸게 됩니다.
꿈의 내용은 자신이 괴물이 되어 행인 네 사람을 살해하고, 카오리를 습격하는 꿈이었습니다.

그리고 다음날 아침, 주인공은 TV 뉴스를 보는데,
꿈에서 본 장소에서 사람들이 정체 모를 괴물에게 살해당하고,
카오리가 실종되었다는 소식을 듣게 됩니다.


묘사 자체는 <시즈쿠>의 중2병에 비해 훨씬 깔끔해졌습니다.
여전히 시대에 비해서 깊은 묘사를 보여 주기는 하지만,
주인공이 혼자 망상하는 게 아니라 
주인공 내면에 존재하는 괴물의 속삭임이기 때문에 부담이 덜 되고,
주인공의 상황 자체가 많은 고민이 있을 수밖에 없는 상태이기 때문에
충분한 설득력이 있습니다.



상냥한 누님스타일인 장녀 치즈루입니다.
제작진 공인의 위선자 캐릭터이지만
적어도 본편에서 나쁜 모습을 보여준 적은 없고,
부모를 잃은 자매들을 잘 이끄는 책임감 있는 맏언니입니다.



스토리도 치즈루 루트가 가장 훌륭했다고 생각합니다.
괴물이 된 주인공을 향해 '당신을 죽이겠습니다.'라는 명대사가 있는데
2회차 이상의 플레이에서는 이 대사가
굉장히 많은 고민이 함축된 말이라는 걸 느낄 수 있습니다. 


치즈루 루트는 게임 디자인 측면에서
대체로 가장 먼저 볼 수 있도록 만들어진 스토리인데
이쪽이 가장 훌륭하다는 점은 안타깝기도 합니다.
이 이후로 아즈사, 카에데, 하츠네 루트 순서로 진행되는데
스토리의 박력이 점점 떨어지는 느낌을 받습니다.

스토리상 중요한 정보를 각각의 스토리에 배분했는데,
이는 멀티엔딩 게임으로서 훌륭한 점이라고 생각합니다만,
치즈루, 아즈사 루트에서 미스터리했던 떡밥의 거의 모든 게 벌써 다 밝혀져 버리고,
하츠네 루트쯤 가면 별 궁금한 것도 없습니다.
아쉬운 점이죠.


다만, 선택지 게임으로서 스토리를 예측하기 힘들게 한 점은 높이 평가합니다.
쓸모없는 선택지가 많고, 
해피 엔딩으로 가는 난이도가 낮은 편이 아니기 때문에 
공략집을 보고 플레이하지 않는다면 꽤 예측 불허의 스토리가 펼쳐집니다.



차녀 아즈사의 스토리입니다.
수사 끝에 주인공과 아즈사는 카오리가 납치되었을만한 장소를 찾아냈습니다.
들어가기 전에 무기를 준비할 것인지 경찰에 신고할 것인지를 
결정하는 선택지가 있습니다. 

먼저, 경찰에 신고를 해 보았습니다.
한 번 만났던 적이 있는 야나가와라는 형사가 동행하게 됩니다.
맨션에서 카오리를 찾아내기는 했는데,
형사가 어디서 뭘 하고 있었는지 누군가에게 습격당하는 바람에 
주인공과 아즈사까지 붙잡히게 된다는 배드엔딩이 되었습니다.

그 다음은 무기를 준비하는 선택지를 골랐습니다. 
근데, 아즈사가 무기따위는 필요없고 자신의 양 주먹을 믿으라고 합니다.
사실 주인공 가문은 특별한 가문으로 자매는 모두 특수한 능력을 갖고 있다고 합니다.
아마도, 아즈사의 능력은 괴력같은 것 같습니다.
이런 전기물에서 이능력이라니 정말 든든한 무기입니다. 

이번에도 맨션에서 카오리를 찾아내게 되는데,
신고도 한 적도 없는데 현관에서 야나가와 형사가 등장합니다.
예상하기 어려운 사실은 아닙니다만, 야나가와 형사가 범인이었습니다.

방금 전에 신고한다는 선택지를 골랐을 때는 
갑자기 습격당해서 힘을 쓸 타이밍이 없었지만,
이번에야말로 아즈사의 괴력을 발휘하여 적을 쓰러뜨릴 때입니다.

그렇게 생각했습니다만, 형사가 총을 쏘는 바람에
괴력 한 번 써보지도 못하고 사망 엔딩이었습니다.
정말 예측할 수 없는 스토리입니다.


사실, 예측 불허의 사례로 들기에 아즈사의 스토리는 적절치 못했습니다.
결말면에서 비판을 많이 받는 스토리죠.
카오리를 찾아 수사하는 장면까지는 정말 좋았습니다만
그 후로는 다소 허무했습니다. 해피엔딩도요.

이런 스토리가 결국 아즈사의 캐릭터까지 망하게 하고 말았습니다.
아즈사의 인기는 네 자매 중 최하위권입니다.
아즈사가 호쾌한 주먹질이라도 보여 줬더라면
이렇게까지 망하지는 않았을 거라고 생각됩니다.




다음은 왠지 주인공을 피하는 셋째 카에데의 스토리입니다.
마지막에는 카에데의 태도에 대한 모든 의문이 풀리게 되고
주인공과 카에데는 연인이 됩니다.
자초지종을 지켜 보고 있던 장녀 치즈루는
주인공이 내면에 있는 괴물을 제어할 수 있을지 테스트를 하기로 합니다.
주인공, 카에데, 치즈루는 인적이 드문 산 속으로 올라갑니다.



주인공이 괴물을 제어하지 못하는 모습을 보이자
치즈루가 다시 '당신을 죽이겠습니다'라는 명대사를 꺼내 듭니다.
명대사도 한, 두 번 볼때나 좋지 카에데 루트까지 와서 저 대사를 꺼내니
유행어로 미는 것 같은 느낌이 들어서 약간 거부감이 듭니다.

아무튼, 치즈루의 공격에 다시 피가 튀는 장면이 묘사됩니다.
숱한 배드엔딩을 봐 왔던 플레이어는 또 배드엔딩인가 하고 좌절하게 됩니다.
근데, 상처가 얕아서 아직 안 죽었습니다.

치즈루는 다시 공격을 하는데 이번엔 사이에 카에데가 끼어듭니다.
괴물이 된 주인공은 가까스로 이성을 회복하여 반격하고
치즈루가 정신을 잃고 쓰러지게 만듬으로써 카에데를 보호하는데 성공합니다.
드디어 해피엔딩을 보게 되는구나하고 감동하는 순간입니다.

하지만, 잠깐의 이성일 뿐이었고 괴물이 된 주인공은
카에데와 치즈루를 남겨놓고 떠난다는 배드엔딩이었습니다.


이런 점이 멀티 엔딩을 만들기 쉽지 않은 만화나 영화, 소설과는 다른 
선택지형 비주얼 노벨만의 특색입니다.
다른 매체에서는 주요 인물이 어떤 위기에 빠지더라도, 어떤 강대한 적을 만나더라도
결국에는 주인공이 죽지 않고 어떻게는 위기를 헤쳐나오리라고
예측하기 어렵지 않습니다.

장르의 성격 때문일 수도 있고, 시리즈의 인기 때문일 수도 있습니다.
한 권짜리 소설이라면 몇 페이지가 남아있는지
만화책이라면 몇 권 남아있는지, 영화라면 상영시간이 얼마나 남았는지를 보고
곧 결말이라는 걸 예측할 수도 있죠.

하지만, 비주얼 노벨에서는 그런 예측에서 자유롭게 스토리를 전개할 수 있습니다.
아즈사 스토리처럼 뭔가 보여주는가 했는데 허무하게 죽어 버릴 수도 있고,
카에데 스토리처럼 배드엔딩일 줄 알았다가 해피엔딩일 줄 알았다가를
반복하며 플레이어를 농락할 수도 있죠.

멀티엔딩 게임이다 보니 지금 진행되고 있는 스토리에서
위기에 빠진 주인공이 이 위기를 극복할 수 있는지,
아니면 그대로 절망하게 될지 
플레이어는 손에 땀을 쥐고 지켜 보게 됩니다.

비주얼 노벨의 초기 형태임에도 불구하고,
키즈아토에서는 이런 밀당을 정말 잘 이용했습니다.
<시즈쿠>에서도 비슷한 모습을 보여줬지만,
<시즈쿠>는 선택지가 많지 않았고 비교적 난이도가 쉬웠습니다.
키즈아토 쪽이 훨씬 괜찮다고 생각됩니다.


사실, 치즈루나 카에데의 해피엔딩은 한 번에 볼 수 없도록
시스템으로 막아 놓았습니다.
정해진 배드엔딩을 봐야 해피엔딩을 볼 수 있도록 새로운 선택지가 등장하는 방식입니다.

새로운 선택지나 다른 루트에 대해서는
엔딩곡 이후에 각 캐릭터들이 등장하여 플레이어에게 힌트를 주게 됩니다.
이 부분도 <시즈쿠>보다 세련된 방식입니다.

<시즈쿠>에서는 캐릭터가 등장하여 '13개의 엔딩이 있으니까 확인해 봐.'라고 
직접적으로 알려주는 방식이었습니다.
반면에, 키즈아토에서는 간접적으로 알려주게 됩니다.
마지막에 동료 형사가 등장하여 '야나가와, 요즘 무슨 고민이 있어?'하면서 
야나가와 시점의 루트가 열리게 됩니다.
하츠네가 등장해서 '내 방에 불꽃놀이 세트가 있는데 같이 하러가면 안 돼?'라고 하며
하츠네 루트가 열리게 되죠.



귀엽고 착한 막내 하츠네입니다.
스토리는 가장 아쉬웠다고 생각합니다.
크게 나쁘지는 않았지만, 복선은 앞의 세 명이 다 회수했고
굳이 필요한지 의문이 드는 스토리였습니다.
마무리도 뜬금없었고요.




2002년에 발매된 리뉴얼판입니다.
메인 스토리는 텍스트 상 자잘한 수정을 가했고, 
오마케 스토리는 표절 논란이 있던 스토리를 빼 버리고,
새로운 오마케 스토리를 집어 넣었습니다.

보이스가 들어있지 않다는 점은 많이 아쉬운 부분이었습니다.
하지만, 스토리에 약간의 서술 트릭이 있다는 점은 감안해야 합니다.
실제로 2009년 리뉴얼판을 처음 플레이한 사람 중에는 목소리만 듣고 
범인의 정체를 알아서 맥이 빠졌다는 사람도 있었습니다.



맹비난을 받았던 부분은 들쭉날쭉한 그래픽이었습니다.
원작은 발매년도가 96년도라는 걸 감안해도 좋은 그래픽이 아니었기 때문에
리뉴얼판에서 그 점을 해소해 줬어야 했는데 그렇지 못했습니다.

저는 2009년 리뉴얼판이 나오기 전까지
2002년 리뉴얼판을 추천하시는 분을 단 한 명도 만나지 못 했습니다.
모두들 차라리 96년도 판을 플레이하는 게 낫다고 하더라고요.

<시즈쿠>의 경우에는, 그래도 리메이크 판의 손을 들어주는 사람도 있었는데 말이죠.
이건 보이스의 문제일 수도 있습니다.



그렇게까지 비판적일 필요가 있을까하는 생각도 듭니다.
그래픽 문제는 인정합니다만, 개인적으로 마음에 드는 CG도 많이 있었습니다.
추가된 장면도 여럿 있었고요.
보이스가 없던 점은 많이 아쉬웠지만요.



2002년판 텍스트와 CG를 기준으로 그래픽을 다시 한 번 수정한 2009년 리뉴얼판입니다.
그래픽에 대해서는 여전히 원작이 낫다 하시는 분도 있긴 했지만
대체로 큰 불만은 나오지 않았습니다.



치즈루씨의 귀여움도, 무서움도 2009년 리뉴얼판이 최고라고 생각합니다.
'당신을 죽이겠습니다'라는 대사를 여러 번 들어 왔지만
이번에야말로 살아남지 못하겠구나라는 생각이 절로 드는 카리스마입니다.



'보름 후'라는 오리지널 시나리오도 추가되었는데
분량이 상당하고 배드 엔딩 수도 많습니다.
전체적인 스토리가 그렇게 나쁜 편은 아니지만 호불호가 갈리는 편입니다.
원작과 어울리지 않는 부분이 있는 건 맞습니다.



총평하자면, <시즈쿠> 발매 이후, 고작 반 년만에 발매된 게임이지만
그 수준 차이가 적지 않은 높은 레벨의 게임입니다.
<시즈쿠>에서 미처 투입하지 못했던 여력을
키즈아토에 몽땅 쏟아 부은 듯한 느낌이 듭니다.

훌륭한 스토리, 잘 뽑힌 캐릭터, 충실한 사운드, 
비주얼 노벨 시스템에 대한 탁월한 이해와 활용도,
그리고 멋진 리메이크까지 제가 좋아하는 요소들을 혼자 다 가진 게임인데
이걸 추천하지 않을 이유가 어디에 있습니까?

특히, 비주얼 노벨에 대한 구성은
1탄 <시즈쿠>를 제치고 장르의 완성이라고 불러도 좋을 정도입니다.
키즈아토가 직접적인 영향을 준 게임으로 타입문의 <월희>가 꼽히지만,
그 외에도 수많은 비주얼 노벨에 영감을 줬다고 봐도 무방합니다.

워낙 오래된 게임이라서 이후에 나온 비슷한 게임이 더 플레이하기 수월하다는 분도 있고,
특히, 현재 시점에서는 차라리 <월희>를 플레이하는 게 낫다는 분도 있습니다.
<월희>도 명작이라고 생각하기 때문에, 딱히 부정할 수는 없네요.

키즈아토에는 키즈아토만의 매력이 있습니다.
대세에 맞춰 2002년 리뉴얼판은 빼고,
한국어 패치가 있는 96년판과
한국어 패치는 없지만 유려한 그래픽과 보이스가 있는 2009년 리뉴얼판을
추천하겠습니다.

댓글 2개:

  1. np21//

    광기에 대한 서술이 호불호가 갈려서 시즈쿠는 요즘 플레이하기 참 힘든 게임인 것 같습니다.
    반면에, 키즈아토에서는 지금 플레이해도 거슬리는 부분이 크게 없었네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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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2. 스토리 기억에남는건 별로없는데 치즈루 성우잘뽑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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