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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0년 8월 30일 일요일

리뷰 : V.G.NEO(2003/12/19,GIGA)

 * 이 리뷰는 치명적인 스포일러를 포함하고 있습니다.



V.G.시리즈의 마지막 게임 <V.G.NEO>입니다.
제 체감으로는 인지도가 꽤 있는 게임이었는데
풀애니메이션 오프닝 영상에 오프닝 곡이 워낙 명곡이었던 탓도 있고,
성인 애니메이션으로 출시된 탓도 있습니다.

다만, 인지도에 비해 정작 게임을 플레이한 사람은 적었습니다.
오프닝 영상만 알고 있던 사람 중에는
뒤늦게 이 게임이 ㄴㅇ이 가미된 게임이라는 사실을 알고 충격을 먹은 사람도 있었죠. 


이 게임의 시나리오 라이터는 마루토 후미아키인데
15년전~10년전 쯤에 에로게 업계에서 질과 양, 두마리 토끼를 잡았던
가장 출중했던 작가 중 한 명입니다.
V.G.NEO는 마루토 작품 중에서도 초기 작품인데
호불호가 많이 갈리는 작품으로
아예 마루토의 흑역사라고 부르는 사람도 있었습니다.

마루토는 상당히 타율이 높은 작가였습니다.
초기 몇 작품을 제외하면 발매하는 게임마다 높은 평가를 받았고
대체로 라이트한 소재, 쉽게 읽히는 텍스트 덕분에
호불호가 많이 갈리지 않는 시나리오를 주로 썼습니다.

반면에, V.G.NEO는 확실히 이질적입니다.
배틀도, ㄴㅇ도 다른 마루토 작품에서는 보기 힘든 소재죠.
호불호가 갈리는 건 당연합니다.
그렇다면 정말로 V.G.NEO는 마루토의 흑역사일까요?
한 번 살펴 봅시다.
  


텍스트 어드벤처 게임입니다.
선택지가 많이 나오긴 하지만 배드엔딩이 약간 있을 뿐,
사실상 단일루트 게임이죠.

특이한 점은 H씬의 절대 다수는 오프닝 영상처럼 애니메이션으로 되어 있다는 겁니다.
여덟 명의 웨이트리스가 토너먼트 식으로 경기를 치르고
패자에게는 애니메이션 ㄴㅇ씬이 기다리고 있습니다.



캐릭터는 이전까지의 고인물들을 갈아 엎었습니다.
신 캐릭터들의 대결입니다.

주인공의 이름은 아스카 유우입니다.
과거 무술을 했던 적도 있지만,
현재는 오빠가 경영하는 레스토랑의 웨이트리스 아르바이트를 하고 있습니다.
부모님이 사고로 돌아가신 이후, 오빠와 단 둘이서 살게 되었는데
오빠를 과하게 좋아하는 여동생으로
오빠에게 접근하는 여성은 전부 유우 선에서 차단됩니다.




그러던 어느 날, 유우는 레스토랑에 부모님이 남긴 거액의 빚이 있다는 사실을 알게 됩니다.
고민하던 유우는 우승 상금 10억엔의 비밀 격투 대회 V.G.에 대한 소문을 듣게 됩니다.
오빠와 레스토랑을 지키기 위해서 유우는 가출을 해 버리고
수상하기 짝이 없는 대회에 참가하게 됩니다.


V.G.는 호화 여객선 안에서 펼쳐지는 
아름다운 웨이트리스들의 격투 대회입니다.
이종격투기 선수도 아니고 웨이트리스들이 싸워봤자
얼마나 잘 싸우겠습니까?
패배하면 ㄴㅇ당한다는 규칙이 좀 걸리긴 하지만
나만 아니면 되는 거죠.



그런 유우 앞에 나타난 1차전 상대는
유우의 오랜 친구이자 선의의 라이벌, 사나리입니다.
연락도 없이 가출한 유우를 찾아 여기까지 쫓아온 겁니다.

사나리는 유우에게 패배하고 유우가 보는 앞에서 비참하게 ㄴㅇ당하게 됩니다.
유우는 그 죄책감과 충격을 떨쳐 버리는 데 상당한 시간이 걸리죠.

격투 바보 캐릭터 사나리지만 격투 외의 일에는 의외로 머리를 잘 씁니다.
1차전이 끝나고 패배자는 감옥에 갇히게 되는데
사나리는 시계도 없는 감옥에서 잠깐 들은 시간으로
수 시간 후를 감각적으로 정확히 맞춥니다.

머리를 써서 경비원을 속이고 탈옥까지 해서, 
중계석으로 난입해 준결승을 벌이는 유우를 응원합니다.
캐스터가 기껏 탈옥해서 도망 안 가고 뭐하냐고 묻자,
'도망친 게 아니라, 응원하러 온 것'이라고 태연하게 대답하죠.



마지막에는 강력한 인조인간 L3와 상대하게 되는데,
조력자가 '세계 챔피언도 그 인조인간에게는 이길 수 없다'는 말을 하자
오히려 신나서 덤벼 듭니다.



두 번째 경기에서는 미국 카우보이 스타일의 다리안이라는 캐릭터가 등장합니다.
호쾌한 성격으로 레스토랑을 노리는 야쿠자를 혼자 쓸어버린 전적이 있죠.
캐릭터의 이미지 자체가 강캐일 수는 있지만 최강 라인에 들기는 부족해 보입니다.
아니나 다를까 1라운드에 탈락해서 감옥에 갇힙니다.



사실 금발은 가발이었고 본명은 리타라고 합니다.
주최측의 계획을 망치러 온 스파이죠.
대회 참가 전에 사나리와 인연이 생겨서, 사나리를 도와주기도 합니다.



다리안의 1라운드 상대는 아유미입니다.
덤벙거리는 성격이고 스스로도 자신의 강함에 자신이 없습니다.
관객들의 우승 예측에서는 꼴찌를 차지하기도 했죠. 

사실은 엄청난 격투 천재에 스피드는 참가자 중 최강입니다.
어설프지만 성장형 캐릭터로 다리안과의 승부에서
극적으로 성장하는 모습을 보여 줄 것 같지만,
실제로는 초반 개그씬 이후 유효타 한 번을 허용하지 않고
압도적으로 다리안을 털어 버립니다.
구경하던 경쟁자들이 저 스피드에 어떻게 대응을 해야 하나하고 고민하게 만들죠.



세 번째 경기에 등장하는 케이입니다.
백발, 동안, 안경, 과묵, 정체 불명의 이능력,
많은 양의 떡밥을 혼자 짊어지고 있는 듯한 태도까지
잘만 하면 세계관 최강자까지 노려볼 만한 캐릭터 특성입니다.
이런 캐릭터가 1라운드 탈락한다는 건 말도 안 되죠.



그러나 안타깝게도 상대가 나빴습니다.
상대 캐릭터의 이름은 안나로
호전적인데다가 주최측의 비밀 프로젝트와 관련되어 있습니다.
결정적으로, 오프닝 영상에서 주인공과 라이벌 플래그를 세우기까지 했죠.
캐릭터성에서 안나가 승리했습니다.




마지막 경기에서는 중국 4천년 무술의 계승자 유이 친쥬가 등장합니다.
본명보다는 타마씨라고 불립니다.
어디에 갖다 놓든 숨겨진 강캐가 되는 실눈 캐릭터입니다.
심지어 오프닝 영상에서는 눈도 뜹니다.



주인공과 라이벌의 장외 시비를 여유있고 유머러스하게
중재하는 모습까지 보여 줍니다.
대체 누가 이런 캐릭터를 고작 1차전에서 꺾을 수 있겠습니까?



이번에도 역시 상대가 나빴습니다.
미스티라는 이름으로 등장하는 캐릭터지만
제 이전 리뷰를 보신 분이라면 옷차림만 보고도 그 정체를 알 수 있죠.
10년동안 이어진 역대 V.G.시리즈의 원톱 주인공 유카입니다.

게다가 정체를 숨기고 싶은 레전드만이 착용한다는 
바이저 마스크까지 착용하고 있습니다.



나름 화려하게 등장했지만 캐릭터성이 밀린 걸 알고 한탄하는 타마씨입니다.
다양한 중국 무술로 꽤 선방하지만 결국 정체를 숨긴 레전드를 넘지 못하고 패배합니다.


여기까지가 등장하는 캐릭터들입니다.
캐릭터들이 승패와 상관없이 너무 잘 만들어져 있기 때문에
1라운드에 탈락시키기에는 아깝죠.
이 아쉬움을 해소하기 위해 게임에서 선택한 방법은 두 가지입니다.



첫 번째는 시합 시작하기 전에 보여주는 각 캐릭터들의 과거 회상입니다.
패배자들은 본편에서 강함을 어필하기 힘들었기 때문에
회상에서 강적들을 대파하며 강력함을 어필합니다.



두 번째는 대회가 망쳐지고 패배자가 모두 탈옥한 이후의
인조인간들과의 대결입니다.
강력한 적들과 상대하면서 좀 더 성장하는 모습을 보여 주기도 합니다.

이런 식으로 매력적인 캐릭터를 만들고 
그 캐릭터를 훌륭히 활용하고 있습니다.



또한, 한 번 클리어한 이후에는 스토리의 뒷면을 보여주는 루트가 개방됩니다.
전반적인 스토리는 똑같지만 유우의 오빠와 미스티의 시점을 추가함으로써
V.G.의 숨겨진 목적을 알 수 있습니다.
여러 반전을 사용한 예측불허의 스토리가 일품입니다.



이번에는 호불호가 갈리는 부분을 살펴 봅시다.
크게 호불호가 갈리는 부분은 두 가지인데 바로 배틀씬과 ㄴㅇ씬입니다.
장르가 배틀ㄴㅇ물인데 그 두 가지가 비판 받는다고요.

배틀의 경우는 연출도 텍스트도 평균 이하로 느껴져
전반적으로 박력이 떨어집니다.
마루토는 배틀물을 이 게임 이전에도 이후에도 제대로 다뤘던 적이 없었죠.
유일하게 다뤘던 이 게임에서는 약한 모습을 보여 줬습니다.

ㄴㅇ씬에 적용되는 애니메이션을 
차라리 배틀물에 적용했으면 어땠을까하는 의견도 있지만
ㄴㅇ씬 애니메이션 수준을 봤을 때, 그래도 여전히 어설펐을 것 같습니다.


ㄴㅇ씬같은 경우는 재미가 없다는 의견도 많지만
개인적으로는 H씬 존재 자체가 문제라는 생각이 듭니다.

이 게임이 배틀씬 자체는 약하더라도, 
배틀물로서의 캐릭터들의 노력, 성장, 시합 후의 태도 등 높이 평가할 요소가 많은데
승부의 여운을 느낄 틈도 없이 불필요한 장면을 끼얹어 버립니다.
오히려 재미있는 승부를 모욕하는 것같은 느낌을 받았어요.



이 게임은 결국 기획 단계에서 문제가 존재하지 않았나 하는 생각이 듭니다.
V.G.시리즈는 오랜 기간동안 여러 게임이 나왔지만
딱히 누적되는 설정이 없었습니다.
오랫동안 정들었던 캐릭터들은 많았지만 
정작 V.G.NEO에서는 유카 이외에 모든 이전 캐릭터가 등장하지 않았죠.


전작에서 물려준 거라고는 인조인간같은 기초적이고 소소한 기반과
'웨이트리스들끼리 격투를 해서 패배자는 ㄴㅇ당한다'는
싼티나고, 호불호가 갈리고, 위화감 넘치는 설정밖에 없었습니다.
특별한 스토리가 없는 격투게임일 때는 이 설정이 크게 부담스럽지 않았지만
제대로 갖춰진 스토리를 만들기에 적절하지 않은 소재였어요.

마루토도 ㄴㅇ설정을 살릴 방법이 마땅치 않았던 건지
준결승전부터는 사고가 터지며 패배자에 대한 패널티가 제대로 부여되지 않습니다.
처음에는 ㄴㅇ에만 관심을 갖던 게임 내 관객들조차
점점 그녀들의 배틀에 매료되어 버리고,
침몰하는 배에서 탈출할 생각보다 결승전을 구경하려고 줄을 섭니다.
이런 묘사는 꽤 괜찮았다는 생각이 듭니다.


처음에 이 게임은 마루토의 흑역사라고까지 표현하는 사람이 있었다고 말씀드렸는데
사실 접니다.
호불호가 갈리는 이 게임에 저는 불호의 입장이었죠.
이 게임을 처음 플레이했을 때는 제가 마루토의 팬도 아니었고, 
마루토 이름도 모를 때였으니까요.

하지만, 지금 다시 플레이해 보니 팬심이 생겼기 때문인지
어설픈 설정 속에서 마루토는 나름 선방했다는 생각이 듭니다.
어떤 분은 이 게임을 '일류 요리사가 조잡한 재료로 만든 요리'로 평가했는데 
적절한 평가라고 생각합니다.



총평하자면, 배틀물을 좋아하는 분께도, ㄴㅇ물을 좋아하는 분께도,
마루토 후미아키를 좋아하는 분께도 추천할 수 없는 작품입니다.
허술한 뼈대 위에 이 요소, 저 요소를 덕지덕지 붙여서 만든 게 눈에 확연히 보이고 
억지로 붙인 요소 자체는 나쁘지 않았지만 역할이 애매했죠.

하지만 배틀의 어설픔을 포용할 수 있고, 하드코어한 ㄴㅇ씬에 딱히 거부감이 없으며,
에로에 큰 기대를 하지 않고, 마루토 팬이기까지 하다면,
의외로 괜찮은 부분을 제법 발견하실 수있는 게임이라고 생각합니다. 
뭐, 사실 마루토의 다른 작품 찾는 게 더 빠르긴 합니다.

댓글 2개:

  1. 리뷰 잘 읽었습니다. 시간이 있으면 미스치프 사의 메리고라운드를 리뷰해 줄 수 있나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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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2. np21//
    KOTOKO씨는 언제나 좋지만
    개인적으로는 GIGA하고 궁합이 가장 잘 맞았던 것 같습니다.


    niu67//
    계획때문에 당장은 힘들고, 한달 쯤 후에 가능할 것 같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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