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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2년 2월 6일 일요일

리뷰 : 꽃과 뱀(2005/8/5,elf)

* 이 리뷰는 치명적인 스포일러를 포함하고 있습니다.



<꽃과 뱀>은 일본의 유명 관능소설 작가인 단 오니로쿠의 SM소설을 게임화한 것입니다.
원작 소설은 매우 유명하여,
영화, 성인 애니메이션, 게임, 연극 등 다양한 미디어로 나왔는데
이 중 게임을 엘프 사가 담당했던 것입니다.
처음 플레이했을 때는 이건 굉장히 좋은 게임이라고 생각했었죠.
정신없이 몰입해서 플레이했던 기억이 있습니다.


오랫동안 성인게임에서 보고 싶었던 것은
'단순히 에로가 포함된 스토리가 아닌 농후한 성인 스토리'였으며,
'플레이어가 수동적으로 감상하는 노벨이 아닌 능동적으로 참여할 수 있는 게임'이었습니다.
제가 한창 에로게를 플레이하던 시절,
그걸 지향했던 회사는 딱 하나 있었다고 생각하는데
바로 제가 사랑하는 회사 엘프였습니다.
대표적으로 <꽃과 뱀>이 그런 스타일의 게임이었죠.
 


주인공은 유명한 재벌 집안의 운전기사입니다.
남몰래 회장의 후처 시즈코를 연모하고 있었습니다.



어느 날, 시즈코에게 회장의 딸 케이코가 납치되었다는 소식이 들려 옵니다.
시즈코는 케이코의 안전을 생각하여 경찰에 신고하지 못하고
평소 알고 지내던 여탐정 쿄코에게 연락합니다.



하지만, 쿄코는 별 도움이 안 되었는데
유괴범들의 목표는 몸값이 아니라 시즈코의 납치였던 겁니다.
운전기사인 주인공은 협박당해서 시즈코를 태우고 
산 속에 있는 외딴 저택으로 향하게 됩니다.



사실 케이코의 유괴는 자작극이었습니다.
시즈코를 이곳으로 납치하기 위한 계략이었던 거죠.
케이코는 불량 서클 하자쿠라단의 리더이기도 합니다.

이런 무시무시한 짓을 꾸민 이유는
계모에 대한 반발심도 있었지만, 
사실 케이코는 주인공에 대해 호감이 있었기 때문입니다.
근데 주인공은 시즈코한테만 관심이 있었던 게 문제였죠.



케이코의 하자쿠라단은 젊은 여성들로 이루어진 불량 서클일 뿐이지만
이 저택의 주인은 모리타 조라는 진짜 야쿠자 조직입니다.
굉장히 잔혹한 범죄 조직으로 사람을 죽이는 걸 아무렇지도 않게 생각하는 범죄자들이죠.
빽도 든든해서 재벌집 부인을 납치했는데도
경찰에 잡힐 일은 없다고 자신만만합니다.
대체 무슨 빽인지 궁금하지만 대충 넘어 갑시다.

이 야쿠자 조직의 목적은 여성들을 조교하여 상품으로 만드는 것입니다.
시즈코는 노예가 되어 조교를 당하게 되고
주인공은 알몸에 정조대만 차고 저택을 청소하는 하인으로 전락하게 됩니다.



실력있는 조교사인 오니겐입니다.
주인공을 조교사로 키워 주겠다고 하는군요.
저택의 분위기 때문인지 주인공도 점점 이 미친 짓에 끌리고 있습니다.



여탐정 쿄코가 용케도 하자쿠라단에 잡입하는데 성공했습니다만
결국 정체가 발각되어 붙잡히고 시즈코와 같은 노예가 됩니다.
야쿠자들은 이미 쿄코의 정체를 알고 있으면서도
마지막으로 주인공을 시험하는데,
쿄코를 배신하는 선택을 해야만 제대로 된 엔딩을 볼 수 있습니다.



배신을 하지 않으면 감옥에 갇혀 케이코 발이나 핥아야 하는 신세가 됩니다.
이쪽이 취향이라서 배신을 안 하겠다는 분들도 계시겠지만
발 핥고 풀려나도 결국엔 배드엔딩으로 가기 때문에
어쨌든 배신은 해야 합니다.



이런 식으로 쿄코의 여동생, 그 여동생의 약혼자, 그 약혼자의 누나 등이
줄줄이 납치당하게 됩니다.
그럼에도 경찰에 단 한 번도 발각이 되지 않는데
빽 좋아도 너무 좋은 게 아닌가 하는 생각이 듭니다.



아무튼 이런 미친 야쿠자 저택에서 조교사가 되어
납치된 여성들을 조교하는 게임입니다.
방청소나 하던 알몸 정조대 하인에서 조교사가 되면 마냥 좋을 것 같지만
최종장에서 오니겐과 조교 승부를 벌이게 되고
패배자는 그 자리에서 할복쇼를 한다고 합니다.
하여튼 야쿠자 놈들 뭘 하든 극단적입니다.



이 게임의 강점은 우선 잘 짜여진 스토리입니다.
제가 원작 소설을 안 읽어 봤기 때문에 원작과 얼마나 비슷한지는 모르겠지만
스토리 자체로만 봤을 때는 탁월한 몰입감이 있어요.
조교물 중에서는 상당한 수준입니다.

그래픽 역시 스토리의 분위기에 맞춰,
당대 에로게에서 유행하던 모에 요소를 배제한 점이 훌륭했습니다.
게임의 분위기를 정말 잘 살려줬죠.



<유작>과 비슷한 3D 시스템을 사용하여
플레이어가 주인공을 조작하여 저택을 돌아다닐 수도 있습니다.
이 시스템의 문제는 나중에 말하겠지만
적어도 이 시스템으로 고립감과 폐쇄감을 높인 점은 평가할 수 있습니다.

저택 창문은 모두 콘크리트로 막혀 있으며,
유일한 출구는 야쿠자가 교대로 지키고 있죠.
아무리 돌아 다녀도 출구 따윈 보이지 않습니다.
플레이어가 직접 조작하여 이 점을 확인할 수 있게 만든 건
게임이라는 장르를 잘 활용한 부분이라고 생각됩니다.



스토리 중간중간에 들어 있는 조교 파트입니다.
기본적으로 메인 캐릭터는 시즈코, 케이코, 쿄코, 그리고 쿄코의 여동생 미츠코입니다.
케이코도 후반부에 조직에게 버려져 노예 신세가 됩니다.



캐릭터를 선택한 후에는 무슨 조교를 할지 선택합니다.
스토리 파트동안 저택에서 모은 아이템을 선택해서 결정하는 거죠.

채찍, 촛불 등의 고통 계열,
관장, 이뇨제 등의 배설 계열,
바이브 등의 쾌락 계열이 있습니다.
각각의 수치를 최대치까지 올려야 해당 분야의 엔딩을 볼 수 있습니다.


조교 씬은 취향만 맞는다면 꽤 즐길 수 있게 구성되어 있습니다만
개인적으로는 불만점이 좀 있습니다.

하나는 미니게임입니다.
채찍 조교를 할 때 타이밍에 맞춰 클릭해야 하는 등의
리듬 게임 같은 걸 넣어 놓았는데,
별 쓸모없는 게임이라고 생각합니다.
예전에 이 게임을 처음 플레이를 했을 때는 좋다고 했었는데
지금 생각해 보면 부끄러운 과거죠.

H씬 감상에 방해만 되는 미니게임입니다.
다만, 이건 수동, 자동을 선택할 수 있어
미니게임을 안 하는 설정도 가능하기 때문에 큰 문제는 아닙니다.


또 하나는 부분 애니메이션입니다.
저는 애니메이션 에로게, 움직이는 CG 등에 대해 언제나 비판적인 입장이었는데
당시 이런 걸 적극적으로 개발하려 했던 회사가 있었으니
바로 제가 사랑하는 회사 엘프였습니다.
나중에 엘프 사가 이 부분에서 어느 정도 성과를 보여주기는 하지만,
적어도 꽃과 뱀에서는 좋지 못한 모습을 보여 줬습니다.



당시 에로게가 H씬을 애니메이션으로 처리하는 경우는 대충 이런 식이었습니다.
부분 CG로 봐서 그렇게 티는 안 나는데 전체를 보면 
퀄리티의 하락이 더 확연히 드러납니다.

당시에는 정지되어 있는 CG가 퀄리티를 유지한 채로 움직이는 건
기술적으로나 예산적으로 불가능했고,
움직이는 부분에서는 퀄리티를 다운시킨 애니메이션을 보여 주는 식이었습니다.

개인적으로는 이렇게 퀄리티 다운을 감수하면서까지
움직이는 H씬이 메리트가 있는지 의문이었어요.
특히, 일반적으로 H씬이라면 살이 많이 노출되는데
피부칠이 단조롭게 되는 점이 실망스러웠습니다.

꽃과 뱀같은 경우는 이런 식으로 퀄리티를 떨어 뜨리지 않기 위해서
다른 방법을 취했습니다.
화면의 일부에 작은 '줌업 컷인'을 만들고 그 부분만 움직이게 하는 거죠.
파이X리를 한다면 가슴 부분만을 줌업한 컷인을 삽입해서
그 부분만 움직이게 한 겁니다.

컷인이기 때문에 부분만 움직여도 전체 CG가 어색해지지도 않고,
작은 컷인이기 때문에 그래픽 퀄리티도 그렇게 나빠지지 않았습니다.
제가 지적하는 점은 이렇게까지 움직이는 CG를 만드는 이유가 있냐는 거였죠.
제가 볼 때는 단점은 딱히 안 보였지만 딱히 장점도 없었어요.
왜 이 정도까지 움직이는 CG에 집착하는 건지 
당시에는 굉장히 불만스러워 했습니다.



사실 조교 시스템은 문제가 적은 편입니다.
진짜 문제는 맵 이동 및 수색 시스템에 있었죠.
기본적인 이동은 <유작>과 같은 3D형 이동 방식입니다.



시스템적으로는 꽤 진보했는데
3D 맵에서도 포인트를 클릭하는 게 가능하게 되어 있습니다.
<유작>에서는 없는 기능이었죠.



또한, 돋보기를 눌러 시선 이동도 할 수 있어
맵을 더 구석구석까지 살펴 보는 것도 가능합니다.

이런 진보적인 시스템이 게임 중 어디에 사용되느냐?
전혀 사용되지 않습니다.
어떤 상황이든지, 어떤 이벤트를 보고 싶든지, 어떤 엔딩을 목표로 하든지 간에
시선 이동은 단 한 번도 사용하지 않아도 됩니다.
하다못해 새로운 장소라도 개방되면 시선 이동으로 구경이라도 하겠는데
계속 똑같은 장소만 돌아다녀요.


그도 그럴게, 이 게임은 <유작>처럼 탈출이 목표가 아닙니다.
조교사가 되는 것이 목적이지,
탈출용 아이템을 찾고, 출구를 찾고 이런 게임이 아닌 거에요.



이 시스템으로 하는 게 뭐냐? 바로 조교 아이템을 찾는 겁니다.
이 저택은 청소를 오랫동안 안 한 건지, 야쿠자가 보물 찾기를 하는 건지
어디든 손만 대면 조교 아이템이 우수수 떨어지는 장소입니다.
따라서 저택의 물건들을 건드려 보면서 조교 아이템을 찾는 게
이 게임을 하는 기본 방식이죠.

<유작>같은 경우는
구 교사를 탈출해야 한다는 명확한 목적으로 수색을 했고,
이벤트를 발생시키거나, 아이템을 찾거나, 힌트를 찾는 등
중요한 포인트를 기억하고, 필요한 포인트를 추리하는 즐거움이 있었죠. 

근데 이 게임의 경우는
조교사가 되는 목적과 저택 수색이 무슨 연관이 있는지도 모르겠고,
조교 아이템이 나오는데 무슨 규칙이 있는 것도 아니라서
그냥 지나가면서 저택 가구들을 그냥 만지고 다니는 것 뿐입니다.
이게 무슨 재미가 있는지 모르겠어요.

게다가, 조교 아이템도 특급, 1급, 2급이 있고,
캐릭터마다 상성이 맞는 조교 아이템도 있어서
조교를 더 효율적으로 하고 싶다면
더 좋은 아이템을 찾을 때까지 계속 저택을 수색해야 합니다.

수색이래봐야 그냥 계속 돌아다니면서, 이곳 저곳 손대고 다니는 것뿐이에요.
어떤 아이템이 어떤 장소에서 많이 나온다는 법칙같은 거라도 있었다면
그나마 재미있었을 텐데 그런 것도 전혀 없습니다.
마냥 이동하면서 화면 이 곳, 저 곳을 클릭하는 것 뿐이에요.

게임이라면 노가다도 재미있는 노가다를 시켜야죠.
아무 의미가 없는 노가다를 시키고 있습니다.



이 게임에서 그나마 포인트 클릭이 제대로 사용되는 경우는,
미츠코의 약혼자, 후미오의 역습으로 주인공이 탈출을 결의했을 때 뿐입니다.
비밀통로를 찾기 위해 딱 한 번 포인트 클릭이 활용되죠.

말 나온 김에 탈출 엔딩을 이야기하자면,
후미오가 모리타를 순간적으로 역습해서 권총을 빼앗고 
마침 같이 있던 주인공에게 탈출을 권유합니다.
후미오에게 협력을 선택하면 
주인공은 조교하면서 배운 실력으로 모리타를 묶은 후,
딱 한 명의 여성만 데리고 탈출을 하게 됩니다.

후미오는 미츠코의 약혼자인데,
납치당해 극한의 상황에 몰리긴 했지만 이기적인 본성을 많이 보여주는 캐릭터입니다.
주인공이 여성을 다 구하자고 하나 탈출에 걸리적거리니 
단 한 명만을 허락합니다.

아무리 극단적인 상황이라지만
자기 약혼자인 미츠코나 누나인 사요코조차 구할 생각도 안 해요.
하지만, 주인공만은 끝까지 버리지 않습니다.
차로 탈출해야 하는데 부자집 도련님이라 운전할 줄을 몰라서요.

어쨌든, 이 부분에서 지독한 야쿠자 저택에서 탈출하는 장면은 
분량은 적지만 꽤 흥미진진합니다.



아쉬운 점은 이 탈출 엔딩도 캐릭터마다 있는데,
캐릭터들의 특색을 제대로 살리지 못하고 탈출하는 방식이 다 똑같다는 점입니다.
그래도 탈출하기 직전, 마지막에 같이 탈출할 캐릭터를 선택하는 것만으로 
모든 엔딩을 볼 수 있기 때문에 큰 고생없이 모든 탈출 엔딩을 볼 수 있죠.



문제는 조교 엔딩입니다. 오니겐과의 조교 승부에서 이기면 볼 수 있는 엔딩이죠.
탈출 엔딩을 제외하고 각 캐릭터마다 고통, 배설, 쾌락계 엔딩이 세 개씩 있습니다.
기타 엔딩과 배드 엔딩을 제외하고도 이미 열두 개입니다.

조교 엔딩이 이렇게 많은데, 
이 엔딩들을 다 보기 위해서는 꽤 고생을 해야 합니다.
수색 노가다를 통해 최대한 좋은 아이템을 많이 찾아서 동시 공략을 노리거나
아니면 게임을 몇 번이고 다시 하는 방법 뿐인데,
양쪽 다 재미도 없고 귀찮기만 한 일이죠.

이 시기 엘프 사는 특이하게도 열렬한 팬일수록 더 많은 고통을 받게 하는 회사였습니다.
라이트 팬이라면 엔딩을 모두 보려는 헛짓따위는 하지 않겠죠.
더더욱이 엔딩이 너무 많은 나머지, 
엔딩에서 각 캐릭터의 특색도 제대로 살리지 못했으니까요.

저같이 모든 CG, 모든 엔딩을 다 모으겠다는 생각을 가진 사람만이 고통을 받았습니다.
1회차를 클리어하면 저택 수색은 생략하거나 간소화할 수 있는 설정이 필요했어요.

저는 이 게임을 몇 번이나 플레이했는데
처음 플레이했을 때는 굉장히 좋은 게임이라고 생각했습니다만,
상기의 이유로 플레이하면 할수록 점점 더 평가를 낮추고 있는 게임이기도 합니다. 



총평하자면, 스토리는 정말 좋은 소재였고,
시스템 역시 그에 떨어지지 않는 좋은 재료였습니다.
하지만, 그 둘이 어울리지 않았어요.
시스템을 과감히 포기하거나 더 간소화시켰어야 합니다.

그래도 저는 이 게임을 처음 플레이할 때 상당히 즐길 수 있었고,
엔딩을 모두 보겠다는 생각이 없는 대부분의 분들은
처음의 저처럼 이 게임을 재미있게 즐기실 수 있을 거라고 생각합니다.
첫 플레이에서는 그 단점들조차 신경쓰이지 않는 몰입갑이 있습니다.

제 평가는 옛날같지 않지만,
이런 소재에 흥미가 있는 분들께는 적극 추천하고 싶은 게임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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