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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0년 10월 25일 일요일

리뷰 : 히이라기 언덕의 구관(1996/10/4,U Me SOFT)

* 이 리뷰는 치명적인 스포일러를 포함하고 있습니다.


U Me SOFT에서 발매한 <히이라기 언덕의 구관>입니다.
U Me SOFT는 최근까지 활동을 했던 회사로 알고 있었지만
검색해 보니 마지막 작품을 발매한지 5년이나 되었네요.
그만큼 별 관심이 없는 회사였죠. 취향과 영 맞지 않았거든요.


이 게임은 선택지형 어드벤처 게임입니다.
대체로 선택지에 의해 게임이 진행되며,
장소 이동 커맨드도 가끔 있지만 별 비중은 없습니다.

무슨 선택지를 고르냐에 따라 H씬을 못 볼 수도 있고,
배드엔딩을 볼 수도 있으며,
캐릭터별 엔딩도 적당히 준비되어 있습니다.



스토리는 이렇습니다.
프리 라이터인 주인공은 천식으로 인해 시골의 온천 여관에 요양을 오게 되었습니다.
이 시골 마을에는 히이라기 언덕이라는 산책로가 있고
언덕 위에는 지금은 아무도 살지 않는, 오래된 서양식 저택이 있습니다.

평온한 시골 라이프를 보내던 주인공은
히이라기 언덕의 수풀에서 한 남성의 시체를 발견하게 됩니다.
하루만에 죽었다고 볼 수 없을 정도로 수분이 빠져 미라가 되어 버린 시체,
전설에 나오는 요괴 소문에 휩싸인 마을,
관광 사업 문제로 인해 경찰 신고를 막으려는 유력자.

혼란한 와중에 희생자는 늘어만 가고,
주인공은 아무도 살지 않는 히이라기 언덕의 저택에서 
불빛이 새어 나오는 것을 목격하게 됩니다. 

대충 이런 내용입니다.
줄거리만큼은 그럴싸하군요.



이 게임에서 가장 실망스러운 점은
실제로 플레이해 보면, 살인 사건과는 전혀 관련 없는 내용이
게임 대부분을 차지한다는 점입니다.

주인공이 숙박하는 여관에는 
OL들이 휴가차 여행을 오거나, 학생들이 졸업여행을 옵니다.
매력적인 캐릭터들의 고민을 들어 주기도 하면서
서로 간에 관계가 깊어지는 거죠.

문제는 이 사람들이 철저할 정도로 마을에서 일어나는 사건과는 전혀 관계가 없다는 겁니다.
목격자도 아니고, 알리바이 증인도 아니고, 
지역하고 무슨 관계라도 있는 것도 아니며,
힌트를 주는 역할도 아니고, 혼란스럽게 하는 역할도 아니며,
하다못해 '이 주변에서 살인 사건이 일어났어요?'라며 예의상 놀라는 역할조차 아닙니다.
살인사건에 관련된 대사 한 마디 제대로 하지 않습니다.

만에 하나의 용의자 후보조차 아니에요.
주인공과 관계가 끝나면 '안녕~'하고 여관에서 나와 집에 가버립니다.
그러고는 마지막까지 등장하지도 않아요.
추리물의 관점에서 보면 전혀 의미없는 등장인물입니다.



이런 캐릭터들이 등장하는 이유는 간단합니다.
추리물에 사건이 부족한 건 문제가 안 되지만
에로게에 에로가 부족한 건 큰 문제가 되기 때문이죠.

개인적으로는 그다지 좋게 보지 않는 경향이지만 드문 경우는 아닙니다.
다만, 좀 더 자연스럽게 스토리에 녹일 수는 없었을까 하는 아쉬움은 있죠.
이미 말씀드린 것처럼, 최소 마지막까지 등장하는 마을 사람이었더라면
용의자A,B정도는 될 수 있었잖아요.

게임을 플레이하다 보면, 굳이 추리를 하거나 범인을 맞출 생각이 없는 플레이어라도
범인을 추측하는 건 어렵지 않습니다.
왜냐면, 등장인물 중에 역할이 애매한 딱 한 명이 자연스럽게 보이기 때문이죠.
그 사람이 범인입니다.



추리물로서 평가할 부분이 아예 없는 수준은 아닙니다.
특히, 프리 라이터인 주인공이 의외로 날카로운데
갈림길에서의 상황을 보고 범인이 저택으로 도망쳤을 거라고 예상하거나,
범인으로 의심되는 사람에게 가짜 정보를 주거나 하는 등의 활약이 있습니다.
다만, 전체적인 평가를 뒤집기에는 역부족이었죠.



클라이막스에서 사건 관계자들이 의문의 초대장을 받고
히이라기 언덕 저택에 모이는 것도 부자연스러웠습니다.
게임 제목도 있고, 스토리에서도 이 저택을 강조했으니
저택을 마지막 무대로 선정한 것 자체는 적절합니다.

하지만, 아직 연쇄살인범이 붙잡히지도 않았는데
발신 불명의 초대장만 믿고 사람들이 고분고분 모인다는 게 어색하지 않나요?
위험할지도 모른다는 발상조차 없는지 경찰은 부르지도 않아요.

협박이라든지, 호기심이라든지 사람들이 한 자리에 모일 이유를 만들었으면 좋았잖아요.
그런 복선들을 게임 중반부에 넣어놨어야죠.
OL들과 놀아나는 장면을 넣을 게 아니라요.

이 어색한 클라이막스가 이 게임을 기어이
두 시간짜리 미스터리 드라마 수준으로 격하시켜 버렸다고 봅니다.
결말이 좀 더 세련되었더라면 이 게임에 더 높은 점수를 줬을 것입니다.



캐릭터와 에로 측면에서 보자면 그렇게 나쁘지는 않았습니다.
특히, 미스터리를 망하게 한 원흉인 OL 삼인방은
오히려 이 게임에서 가장 마음에 드는 캐릭터들입니다.
 


이 게임은 2005년도에 <히이라기 언덕의 구관R>로 리메이크 되었습니다.
같은 회사의 <유메미언덕>, <추억의 언덕>과 함께 <세 언덕 이야기>로 판매된 적도 있죠.

스토리는 전혀 변하지 않았지만, 그래픽이 크게 변화했죠.
대부분의 캐릭터 원화가 제 마음에 들도록 바뀌었습니다.



메인 히로인인 미사키의 경우는 좋아하는 성우가 배역을 맡은 점도 마음에 들었습니다.



총평하자면, 추리물로서는 아쉽고, 에로게로서는 적당히 즐길만한 게임입니다.
곁가지들을 잘라 버리고, 추리 요소에 더 높은 비중을 줬으면 좋았을 것 같은데,
리메이크를 플레이해 본 결과, 차라리 추리 요소를 잘라 버리고 
여관손님들과 노닥거리는 게임을 만들었어도 좋지 않았을까 하는 생각도 듭니다.

U Me SOFT는 윈도우 시절에 들어서면서
별 내용없이 H씬만으로 꽉 찬 게임을 주구장창 뽑아내는 회사였죠.
히이라기 언덕의 구관도 그런 방향으로 리메이크를 진행하는 편이
나았을지도 모르겠습니다.

댓글 1개:

  1. np21//

    CG도 좋고, 보이스도 있어서 이 게임을 즐기기에는 리메이크가 더 적절한 것 같습니다.
    별 생각없이 플레이할만한 게임이라서
    그래픽이 좋은 게 최고였네요.
    근데 리메이크는 인터페이스가 발매 시기에 비해 별로더라고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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