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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0년 11월 1일 일요일

리뷰 : ROSE BLOOD ~피의 갈증~(1996/9/13,아아루)

 * 이 리뷰는 치명적인 스포일러를 포함하고 있습니다.


아아루는 10년이 채 안 되는 짧은 역사를 지닌 회사입니다만
에로게 역사에 무시할 수 없는 임팩트를 남긴 회사입니다.
바로 '에로게 최초의 전량회수'의 위업을 달성한
희대의 문제작 <코코로>를 발매한 회사죠.



아아루의 첫 작품인 <ROSE BLOOD ~피의 갈증~>입니다.
<코코로>보다는 못 하지만 과격한 스토리와 H씬을 갖고 있는 탐정물이죠.



스토리는 이렇습니다.
레이코라는 여성이 야심한 밤에
공원에서 강X범의 습격을 당하게 됩니다.
다행히도 행위 도중에 공원을 지나가는 남성이 있었고
범인은 범죄를 멈추고 도망가 버립니다.

지나가던 남성은 레이코를 도와주려고 다가오는데
갑자기 레이코가 아는 척을 합니다.
알고 보니 도와 준 남자는 레이코와 고등학교 동창인 케이였던 거죠.



케이에게는 탐정을 하고 있는 친구, 레츠가 있습니다. 이 게임의 주인공이죠. 
주인공은 소꿉친구이자 애인인 미즈키와 함께 탐정업으로 먹고 살고 있습니다.
주인공과 미즈키 역시 피해자인 레이코와 동창이기도 합니다.

레이코는 주인공에게 범인을 찾아 달라는 의뢰를 맡깁니다.
주인공은 고등학교 동창따위 기억도 안 나고,
의뢰 내용도 위험해 보여 탐탁지 않았지만 어쨌든 의뢰를 받아 들입니다.

범인은 경찰이 비밀리에 수사하고 있는 연쇄 강X범입니다.
신고된 피해자만 벌써 여덟 명이죠.
주인공은 알고 지내던 경찰에게 피해자 명단을 받아 옵니다.
사무소에서 명단을 살펴 본 미즈키는 피해자들의 공통점을 한 눈에 찾아 내는데
피해자 전원이 주인공, 미즈키와 고등학교 클래스메이트였던 겁니다.
여덟 명이나 당할 동안, 이 정도 공통점도 못 알아낸 경찰들은 
대체 뭘 하고 있던 건지 알 수가 없습니다.

주인공은 범인이 같은 반이었던 남학생 중에 있을 것으로 추측합니다.
해당 클래스에는 남성 13명, 여성 12명이 있었습니다.
그런데 알고 보니 남자들은 벌써 대부분이 살해당한 상태입니다.
경찰은 각 사건들이 관할이 달라서 잘 몰랐다 이런 식으로 이야기하는데
무능하기 짝이 없습니다.

하지만, 이제 범인 좋은 날은 다 갔습니다.
용의자는 좁혀졌고, 다음 피해자가 누가 될 지도 다 파악했으며,
이제 주인공 탐정이 직접 나서서 범인을 추적하는 겁니다.
범인이 지금까지처럼 자기 편한대로 활개치지 못하겠죠.

...과연 어떨까요?
이후의 스토리를 살펴 봅시다.



주인공의 모교에서 선생님이 된 동창 후지타니입니다.
오랫만에 재회한 후지타니 선생은 주인공에게 적극적으로 관심을 표하지만
이미 애인이 있는 주인공은 선생에게 관심도 없습니다.

후지타니 선생은 학교 도서관에서 습격당합니다.
경찰은 없고, 경비도 없고, 주인공의 대책도 없이
허무하게 습격당하고 맙니다.

뭐, 학교 도서관에서 습격하리라고 누가 예측할 수 있겠습니까?
범인이 방심한 틈을 노려 허를 잘 찌른 거죠.
게임 내에 아무런 설명도 없지만 그냥 그렇게 생각합시다.


그 다음 피해자는 또 다시 레이코입니다.
말했다시피, 행위 도중에 방해를 받았기 때문에 다시 습격을 당한 거죠.
이번에도 역시 경찰도 없었고, 주인공도 아무 대책도 없었습니다.

뭐, 이미 습격당했던 피해자가 다시 습격당하리라고 누가 예측할 수 있겠습니까?
역시 허를 찔렸다고 칩시다. 아무 설명도 없지만요.



그 다음 습격당한 건 회사원 동창 요코입니다.
주인공은 요코에게 위험을 알려주기 위해 집으로 찾아 갔지만
안타깝게도 요코는 회사에서 일하는 중이라 집에 없습니다.
주인공은 '나중에 다시 오지, 뭐'라고 생각하며 돌아 갑니다.

요코는 아무 것도 모르고
다음 날 새벽, 인적 드문 곳에서 조깅하다 습격당합니다.

아니, 범죄가 임박해 있는데 집에 한 번 찾아가고 끝인가요?
퇴근 시간까지 집 앞에서 기다리지는 못하더라도
우편함에 위험하다는 메모라도 남겨 주든가
옆집 사람한테 연락처 주면서 전해 달라고 부탁이라도 하든가
퇴근 시간에 맞춰 전화라도 걸어 보든가 방법은 많잖아요.
게다가, 주인공은 바쁘다 쳐도 경찰은 한 명정도 집 앞에서 잠복하고 있었어야죠.
이따위로 할 거면서 왜 비밀수사를 한 겁니까?

결국 탐정과 경찰의 무관심 속에 요코는 돌이킬 수 없는 상처를 입게 되었습니다.
새벽에 산책로에서 기다리고 있던 범인이 제일 부지런하군요.



이제 피해를 받지 않은 여성 동창은 단 두 명이 남았습니다.
주인공의 연인 미즈키를 제외하면
최후의 1인인 키요네입니다.

이번만큼은 범인에게도 만만치 않은 싸움이 될 것입니다.
키요네는 기자로서 이 사건에 관심을 갖고 조사해 봤으며,
동창들이 습격당하고 있다는 사실을 스스로 알아냈습니다.
미즈키 아니었으면 평생 못 알아냈을 주인공보다 더 실력이 있군요.
게다가, 키요네는 주인공과 예전에 사귄 적이 있습니다.
주인공과 돈독한 관계라는 거죠.

최후의 2인이라서 경찰들도 철통같이 지킬 것이고,
키요네는 이 사건에 대해 이미 알고 있어서 스스로 조심할 것이며,
주인공은 옛 연인인 키요네가 쉽게 습격당하도록 놔두지 않을 것입니다.
이런 상황에서 범인에게 무슨 방법이 있겠습니까?



키요네가 습격당하는 장면입니다.
키요네가 집에 혼자 있을 때 초인종 소리가 울립니다.
키요네는 '누구세요~'하며 문을 열었는데
문 앞에 있는 건 범인이라서 그대로 습격당하게 됩니다.

자신이 다음 피해자가 될 거라는 걸 아는 사람이
고작 초인종 소리에 왜 이렇게 쉽게 문을 열어주는 거죠?
부모님이 초인종을 누르더라도 이보다는 조심할 텐데요.

게다가, 주인공하고 경찰은 대체 뭐하는 겁니까?
왜 아무 대책도 세우지 않는 거죠?
집 앞에 잠복이라도 하고 있었다면 최소한 범인이라도 잡았잖아요.



마지막에 남은 건, 주인공의 연인 미즈키뿐입니다.
게임 종반에는 감기에 걸려 침대에만 누워 있죠.

다행히도 미즈키는 습격당하지 않습니다.
주인공이 잘 지킨 게 아니라, 범인이 노리지도 않았습니다.
주인공을 먼저 처치하고 노리려고 했던 것 같은데 잘 안 된 것 같습니다.

주인공은 소거법으로 남자 동창 13명 중에서 범인을 추려 냅니다.
여기서 소거법이란 나머지는 다 뒤졌다는 이야기입니다.
주인공의 친구 케이는 살아 있지만 결백한 게 확실하죠.
레이코가 범인에게 습격당할 때 지나가다 도와줬으니까요.

주인공이 범인의 은신처를 추적하는 장면도 없습니다.
범인이 폐병원으로 오라고 초대장을 보내 오죠.
미즈키를 습격하려는 유인책일 수도 있었지만
경찰들이 '여긴 우리들이 지킬 테니 안심하라'고 합니다.
진작에 이렇게 했다면 요코와 키요네는 무사했을 텐데 말이죠.

주인공은 친구 케이와 함께 폐병원으로 갑니다.
갑자기 습격해 온 범인과 사투를 벌인 끝에 약품을 이용해서 범인을 태워 죽이죠.



동창들이 모두 습격당하고 살해당했지만
내 알 바 아니고 미즈키와 잘 살았다는 엔딩으로 마무리됩니다.


스토리가 심각할 정도로 문제가 많습니다.
연쇄살인을 소재로 한 추리물의 경우에는 
경찰과 탐정이 어느 정도 무능하게 그려질 때가 있습니다.
연쇄살인이 진행되기도 전에 범인이 잡혀 버리면 안 되니까요.
이 게임에서는 무능한 수준이 아니라 아무 것도 안 했습니다.
이해해 줄 수 있는 선을 넘었어요.

범죄를 막으려는 주인공과 그 계획을 비웃는 범인의 머리싸움을 그릴 수도 있었고,
주인공의 힘겨운 노력에도 불구하고 여성들이 습격당하는 
불행한 우연을 그릴 수도 있었습니다. 

아니면 범죄는 못 막더라도
주인공이 여러 단서들을 통해 범인을 추적하는 스토리가 될 수도 있었고,
동창들과 각별한 우정이 있어서 피해자에 대한 안타까움을 묘사할 수도 있었고,
하나 둘 씩 습격당하는 장면을 보면서 다음에는 
주인공이나 연인 미즈키가 당하는 게 아닐까하는 공포와 압박을 표현할 수도 있었겠죠.

놀랍게도 이 게임은 그 어떤 것도 하지 않았습니다.
전혀 내용이 없어서 뭘 하고 싶었던 건지, 할 생각이 있긴 했는지조차 모르겠어요.

뭐, 처음부터 이렇게 만들 생각은 아니었겠죠.
PC-98 게임에는 분량에 한계가 있습니다.
그 때문에 게임이 만들어지는 과정에서 
여러 내용을 빼다 보니 이렇게 되었다고 봅니다.

추리물에 논리가 부족한 건 문제가 안 되지만
에로게에 에로가 부족한 건 큰 문제가 되기 때문에
내용이 말이 안 되더라도 에로에 충실하려고 했던 거죠.

차라리 동창이라는 설정을 빼 버렸으면 좋았을 겁니다.
특정된 몇 명이 아니라 불특정다수가 습격당하는 스토리였다면 
탐정이나 경찰이 이렇게까지 무능하다는 평가를 받을 일은 없었겠죠.



이 게임은 멀티엔딩 게임입니다.
제가 소개해 드린 내용은 해피엔딩의 스토리이고
다른 루트에서는 주인공이 사망하고 남겨진 미즈키는 친구 케이가 맡는다는 엔딩도 있죠.

해피엔딩에서 밝혀지지 않은 중요한 떡밥은 바로 불에 타 죽은 범인입니다.
갑자기 습격당하는 바람에 범인과 대화도 제대로 못 해봤고,
시체가 잿더미가 되는 바람에 그게 진짜 범인이 맞는지조차 확인하지 못했죠.
이 진실은 다른 루트에서 밝혀 집니다.

결론부터 말하면, 주인공이 추측했던 그 동창이 범인 맞고,
불에 타 죽은 시체도 범인이 맞습니다.
이러면 신원을 알지 못하게 불로 태운 의미가 없는 것 같은데요.
하지만, 스토리 외적으로는 큰 의미가 있는데 
만일 그 시체를 태우지 않았더라면 
제가 다른 루트를 볼 생각도 안 하고 이딴 게임 진작에 꺼 버렸을 것이기 때문이죠.



분기는 미즈키에게 집에 혼자 돌아가라고 했다가 미즈키가 습격당하는 장면입니다.
다행히 뒤늦게 쫓아온 주인공이 이단옆차기로 범인을 쫓아 버려
아무 일도 일어나지는 않습니다.

주인공이 아무 것도 안 하는 건 해피엔딩 스토리와 똑같지만,
해피엔딩에서 끝까지 살아 남았던 친구 케이가 이 루트에서는 목이 잘려 살해당하고, 
주인공 탐정 사무소에 소포로 머리만 배달됩니다.



마지막 장면에서 케이는 죽지 않고 살아있다는 사실이 밝혀집니다.
케이는 범인을 먼저 만나서 역으로 그 범인을 죽여버리고
범인의 머리를 위장해서 소포로 보냈던 겁니다.

주인공은 10년 친구 얼굴조차 제대로 못 알아볼 정도로 눈썰미가 없습니다.
의사인 케이가 그만큼 위장을 잘 했다고 볼 여지도 있지만,
주인공과 같이 있던 키요네는 위화감을 느끼는 바람에 
케이에게 살해당했으니 변명의 여지가 없죠.
진지하게 주인공은 탐정 폐업하고 다른 일자리를 알아보는 게 
모두에게 좋을 것 같습니다.


케이는 주인공의 연인 미즈키를 예전부터 남몰래 좋아했습니다.
하지만, 주인공은 미즈키가 습격당하도록 내버려 뒀죠.
케이는 주인공같은 무능한 놈에게 미즈키를 맡길 수 없다고 생각하게 됩니다.
하나 같이 맞는 말이라 반박할 수가 없습니다.



케이는 주인공을 죽여 시체를 숨기고 스스로에게는 전신화상을 입힙니다.
살아 남은 주인공인 척해서 미즈키와 살아간다는 엔딩입니다.
미즈키에 대한 애정만큼은 진짜인 것 같군요.

반전 자체는 그렇게까지 뛰어나지 않았습니다.
해피엔딩을 플레이할 때, 불에 타 죽은 범인을 보고 
좀 더 정교한 계획을 예상했지만 기대에 못 미친 반전이었죠.
하지만, 아무 내용도 없는 해피엔딩보다는 반전이라도 있는 이 엔딩이 훨씬 낫네요.



총평하자면, 당대에 탐정을 소재로 한 에로게는 많았고
그만큼 쓰레기같은 내용의 탐정물이 많던 시대였지만,
그 쓰레기 중에서도 하위권일 정도로 아쉬운 점이 많이 보였던 게임입니다.

H씬은 시대를 고려하면 과격하고 과감했습니다. 
추리, 스릴러 요소를 포기하고 오로지 ㄴㅇ만을 감상하고 싶은 분들께는
쓸만한 게임일지도 모르겠습니다.
그런 분들에게는 단 한 번도 범인을 못 막는 무능한 주인공이 
감사하게 느껴질 수도 있겠네요.

댓글 6개:

  1. 안녕하세요. 저기.. .여쭤볼게 있습니다.
    아마 90년대 게임으로 생각 됩니다만....
    아, 둘다 성인 게임입니다.

    1. 마법 소녀가 주인공인것 같은 게임입니다. 생각이 잘 안납니다 ㅠㅠ
    마법 소녀로 변신했다가.... 마법 지팡이 같은걸로 주인공의 것을
    피스톤질 하는 내용이였던거 같습니다... 전투나 그런거 없이
    문장을 클릭하는걸로 기억합니다.. 제목을 알 수 있을까요?

    2. 그리고 이건 그것이 알고싶다 프로그램에도 나온게임인데요
    학교에 무장강도가 침입해서 학생들을 인질로 잡고
    H씬을 하는 내용으로 알고 있습니다.

    두 게임을 알고 계신가요 ㅠㅠ
    부탁드립니다 ㅠㅠ

    답글삭제
  2. np21//
    자극적인 맛으로 플레이하는 게임이죠.
    키요네씬도 옛날에 플레이했을때는 정말 충격적이었습니다.

    그리고 아아루 회사는 향후 행보는 더더욱
    약빤 건 게임 캐릭터가 아니라
    아아루인 것 같네요.


    Unknown//
    1번은 좀 어렵네요.
    제가 웬만한 게임은 H씬에 그다지 비중을 안 두기도 하고
    마법소녀물은 옛날부터 워낙 많아서 그정도 단서만으로는 추려내기 힘드네요.
    혹시 더 기억하시는 정보가 있다면 확인 부탁드립니다.

    2번은 아마 PIL의 '학원소돔'인 것 같습니다.
    제 블로그에도 해당 리뷰가 있으니 참고해주세요.
    그 리뷰에는 비슷한 스타일의 게임도 몇 개 적어놨으니
    도움이 되리라고 생각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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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답글
    1. 학원소돔이 맞습니다 ㅎㅎㅎㅎㅎ 감사합니다..

      그리고 1번의 추가 정보를 드리자면은....

      제가 그걸 플레이 한게 2000년이였습니다.
      소위 그당시 유행하던 백업시디에 들어있던 게임인데요
      지금 생각하면은 중국말이였던거 같고.....
      2000년에 플레이 했으니... 90년대 게임일테고....
      여주가 초록색 머리였고... 텍스트로 진행을 하였고....
      흐음..... 이것밖에 모르겠네요 ㅠㅠ

      삭제
    2. Unknown//
      죄송합니다. 일단 2000년도 이전까지의 작품들을 대충 훑어 보았지만
      해당 조건에 맞 게임은 찾을 수 없었습니다.

      안 유명한 게임이나 옴니버스 게임의 한 에피소드일 수도 있을 것 같은데
      그럼 더더욱 찾기 힘들 것 같습니다

      삭제
  3. 이 회사는 그림은 참 괜찮은데 내용들이 하나같이 함량미달이네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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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4. Unknown//
    요즘 같으면 그래픽만 괜찮으면 스토리가 없더라도
    모에와 H씬으로 도배해서
    평타라도 치는 게임을 만들 수 있죠.

    옛날에는 그럴 싸한 스토리라도 만들어야 하다보니
    이런 엉성한 스토리의 게임이 자주 보이네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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