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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0년 12월 13일 일요일

리뷰 : 엿보기가게 생업(1995/2/24,T2)

* 이 리뷰는 치명적인 스포일러를 포함하고 있습니다


스케쥴 관리형 엿보기 게임은 발매된 게임은 많지는 않지만
그 양에 비해 좋은 게임들이 많이 나온 장르입니다.
<개인택시> 시리즈나 <오이라와 반다이> 시리즈,
그리고 <자택경비원> 시리즈 등이 있었죠.

이런 류의 게임들의 조상으로 불려지는 건
98년도에 발매된 <취작>입니다.
<취작>이 높은 완성도를 지닌 게임이었기 때문에
후대의 게임들은 모두 <취작>의 그늘을 벗어나지 못하게 되었죠.



하지만 <취작>보다 먼저 이 시스템을 도입한 에로게가 있었으니
바로 <엿보기가게 생업>입니다.
늘 말씀드리지만 원조보다 더 오래된 이런 게임들이 원조로서 기억되지 못하는 이유는
게임이 별 인기를 끌지 못하고 묻혔기 때문입니다.
과연 이 게임이 묻힌 이유는 무엇인가, 이것이 이번 리뷰의 주제입니다.


일단 특이한 건 주인공의 직업입니다.
<취작>의 주인공은 기숙사 경비원이었고,
<개인택시>의 주인공은 택시기사였으며,
<오이라와 반다이>의 주인공은 목욕탕을 경영했습니다.
하지만, 엿보기가게 생업의 주인공은 엿보기를 생업으로 먹고사는 이 분야의 프로입니다.
과연 프로는 어떤 방법을 쓸지 기대가 되는 게임입니다.

 

스토리는 이렇습니다.
'두목'이라는 사람이 주인공에게 전화를 걸어
누구누구의 H씬을 사진으로 찍어오라는 의뢰를 줍니다.
주인공은 그 사진이 어떻게 사용되는지는 모르겠고
돈 주니까 일하는 것뿐입니다. 단순한 스토리 라인이죠.

두목의 첫 의뢰는 영어교사 미에코의 H씬 사진을 
15일 이내에 가져 오라는 것입니다. 



게임은 주인공 본인의 방에서 시작됩니다.
일단 왼쪽화면의 각 포인트를 클릭할 수 있습니다.
침대, 컴퓨터 등을 클릭하여 잠을 자거나 게임을 할 수 있죠.
피로도같은 요소는 없기 때문에 꼭 취침할 필요는 없고 
별 의미는 없는 시간 보내기입니다.

오른쪽에는 명령 커맨드가 있는데
도청기나 카메라를 설치할 수 있습니다.
설치 커맨드를 눌러 보면, 주인공이 '내 방에 뭐하러 카메라를 설치하냐'고 합니다.
맞는 말입니다. 
카메라 테스트는 나중에 하고 의뢰를 수행하기 위해 일단 밖으로 나가겠습니다.



지도 화면입니다.
여러 장소가 표시되어 있는데 대부분의 장소에 아직 들어가지도 못합니다.



타겟인 미에코가 일하는 학교에 가면,
평소 알고 지냈던 아야라는 캐릭터를 만나게 됩니다.
수요일에 학교로 들어 와서 심부름 좀 해달라고 하죠.

이틀 후에는 합법적으로 학교에 들어갈 수 있게 된 겁니다.
어쨌든 지금은 학교에 들어갈 수 없으니 다른 곳을 찾아 봅시다.



미에코가 살고 있는 맨션입니다.
미에코는 안전하지 못 하게 편지함에 열쇠를 보관하고 있었습니다.
그걸 발견한 주인공은 재빠르게 열쇠를 복사하는데 성공하죠.

하지만, 정작 미에코 집으로는 들어가지 못하는데
주인공이 혹시 집에 누가 있을까봐 겁이 난다고 합니다.
어쩔 수 없습니다. 다른 곳을 돌아 봐야죠.


그러나 그 외에 들어갈 수 있는 곳이 없습니다.
타겟의 직장도 못 들어가, 타겟의 자택도 못 들어가,
들어 갈 수 있는 곳이라고는 주인공 방, 빠칭코, 곤충 박물관밖에 없어요.

주인공 방이나 빠칭코는 시간 때우는 용도로라도 쓸 수 있는데
곤충 박물관은 대체 뭐죠?
병원이나 술집 같은 곳을 방문하면
'여기엔 용무가 없어.'하고 주인공이 들어가지 않습니다.
근데 곤충 박물관은 용무가 없기는 마찬가지임에도 
아무 언급도 없이 자연스럽게 들어 갑니다.

그리고 곤충 박물관에 들어가 봐야 아무 이벤트도 없습니다.
도청기나 카메라를 설치할 수 있는 것도 아니죠.
제가 무슨 파브르도 아니고 
곤충 박물관에 카메라를 설치할 수 있다고 해도 제가 싫습니다.

아무튼, 게임이 시작됐는데 뭘 할 수 있는 곳이 단 한 군데도 없습니다.
충격적이군요.



오후 5시부터 영업을 개시하는 '스피크 이지'라는 술집입니다.
게임이 막혔을 때 힌트를 받을 수 있는 곳이라는 게 공식 설명이지만
필요한 힌트를 받은 적은 한 번도 없습니다.  
쓸데없는 잡담만 할 뿐이죠.

주인공 '마스터, 재미있는 일 없어?'
마스터 '중학생도 아니고, 그런 거 없으니까 일이나 해.'

지금 진행이 막혀서 아무 것도 못하고 있는데
힌트는커녕 이런 얘기 밖에 안 하면 어떡하자는 걸까요?
설마 이 게임에 재미있는 게 없다는 복선만은 아니길 바라면서 또 다른 데로 가봅시다.



동네를 돌아다니다 맨션 앞에서 퇴근하는 미에코를 발견합니다.
따라 들어갈 수도 없으니 다른 데로 가야겠죠.



밤이 되어 아무도 없는 시간대가 되면 드디어 학교에 잠입할 수 있습니다.
학교의 이곳 저곳을 돌아다닐 수 있지만
이번에도 별 볼일 없습니다.

교무실, 미에코가 담임인 교실 등은 문이 잠겨 있으며
운동장이나 체육관에는 카메라를 설치할 장소가 없습니다.

유일한 장소는 생물실 뿐입니다. 미에코는 생물부의 고문선생이죠.
생물실에 카메라를 설치한다는 커맨드를 누르면 주인공은 이렇게 말합니다.

'설치할 장소는 있지만.... 설치할 생각은 없어.'

아니, 설치만 해 볼게요. 시험삼아 설치만이라도 해보겠다고요.
게임 시간으로 무려 동네를 12시간이나 돌아다니면서
카메라 설치할 수 있는 장소를 여기 하나 겨우 찾았는데
설치할 생각이 없다고요? 뭐 어쩌자는 거죠?

첫날은 뭐가 뭔지도 모르고 통으로 날려 먹었습니다.
주인공 방에 가서 잠이나 자야겠군요.



다음날 아침 8시 반입니다. 
맨션에서 미에코의 유일한 동거인인 사요코가 외출하는 모습을 목격합니다.
시간대로 봤을 때, 타겟인 미에코는 학교에 출근했을 시간이죠. 침입 기회입니다.

그러나 누가 있을지 모른다면서 끝까지 타겟의 집에 침입하지 않는 주인공입니다.
아니, 미에코는 출근했을 것이고 유일한 동거인은 외출하는 걸 직접 봤는데
또 누가 있겠습니까?
주인공이 강경하게 거부하니 어쩔 수 없습니다. 다른 곳으로 가 보죠.

학교는 내일에나 들어갈 수 있으니,
이번에도 갈 수 있는 장소가 단 한 군데도 없습니다.
빠칭코나 곤충 박물관 가서 시간이나 때워야겠군요.



오후 6시에 두목이 다른 의뢰를 줍니다.
은행원인 레이코의 H씬 사진을 5일만에 찍어 오라고 하는군요.
주인공은 이틀동안 헛짓거리만 할 뿐 아무 진전도 못 본 상태인데
다행히도 일거리 걱정은 없습니다.



새로운 타겟인 레이코의 자택입니다.
들어간다 커맨드를 누르면
'아무 사전조사도 없이 침입할 수는 없어.'라고 합니다.
암요. 그러시겠죠. 기대도 안 했습니다.


다음날, 레이코가 근무하는 은행으로 가서 탈의실에 잠입합니다.
게임 시간으로 삼 일만에 드디어 카메라를 설치할 수 있는 겁니다.
감동적이기까지 하네요.
퇴근시간에 옷을 갈아 입을 테니 시간에 맞춰 확인만 하면 될 것 같습니다.

오늘은 수요일입니다. 합법적으로 학교에 들어갈 수 있는 날이죠.
빨리 카메라를 설치하고 학교로 가겠습니다.



학교에 가 보면, 밤중에 문이 잠겨 있던 곳이 다 열려 있습니다.
그러나 사람이 있어서 주인공이 안 들어가겠답니다.
놀랍게도 야밤에 잠입했을 때보다 들어갈 수 있는 곳이 줄어 들었습니다.
생물실에도 사람이 있어서 못 들어 가거든요.



학교에서 할 수 있는 일이라고는 아야의 심부름뿐입니다.
수요일에는 미에코와 관련된 뭔가 대단한 이벤트가 터지리라고 생각했건만
놀라울 정도로 아무 일도 일어나지 않았죠.
은행가서 탈의실에 설치한 카메라나 확인합시다.



오후 3시 50분에 은행으로 가보니 은행은 벌써 문을 닫았습니다.
이 시절의 일본 은행은 이랬던 건가요?
아직 4시도 안 됐는데 문 닫고 집에 가버렸다는 말입니까?
이럴 거면, 영업 시간이라도 어딘가에 적어 놨어야죠.
또 허탕을 쳤습니다. 삼 일동안 뭐 하나 제대로 된 게 없어요.


이게 이 게임이 망한 이유입니다. 난이도가 미쳤어요.
처음 플레이하는 사람은 아무 것도 할 수가 없습니다.
들어갈 수 있는 장소도 없고, 
어떻게 해야 한다는 힌트도 거의 없고,
플레이어를 허탕치게 만드는 함정 힌트는 또 더럽게 많습니다.

이 게임을 플레이하는 방법은 이겁니다.
매일 아침에 세이브를 하고, 장소 하나를 정해서 하루 종일 그 장소만 확인하는 겁니다.
몇 시에 무슨 일이 생기는지 확인하여 기억해 두고,
로드한 후에 다른 장소를 하루 종일 확인하는 거죠.

이런 식으로 모든 시간대의 모든 장소를 확인한 후에
각 이벤트를 볼 수 있도록 스케쥴을 짜면 되는 겁니다.
이런 식으로 확인한 결과, 첫 날에는 진짜로 아무 이벤트가 없었습니다.
뭐라도 해 보려면 둘째날까지 기다려야 하는 거죠.



미에코의 집에 침입하는 방법은
7시에 있는 미에코 외출과 8시반에 있는 사요코 외출을 둘 다 확인하는 겁니다.
상식적으로 미에코는 출근했을 시간이야 같은 거 없죠.
꼭 두 눈으로 나가는 장면을 확인해야 하는 겁니다.



카메라와 도청기는 지속시간 12시간, 24시간, 36시간으로 각각 세 개씩 있습니다.
미에코의 맨션에 이런 것들을 설치할 수 있는 장소는
미에코의 방, 사요코의 방, 거실, 목욕탕 네 개가 있죠.
사요코는 타겟이 아니기 때문에
미에코 방, 거실, 목욕탕에는 카메라 세 대를
사요코 방에는 도청기를 설치하도록 하겠습니다.



밤에 카메라를 확인하면 
카메라를 설치해봤자 쥐뿔도 소용없다는 사실을 확인할 수 있습니다.
'심심하네.', '그러네'같은 잡담만 합니다.

게다가 옷 갈아입는 장면도 카메라에 안 찍힐 뿐더러
둘 다 목욕도 안 합니다.
기껏 침입했는데 다음으로 가는 힌트 하나 없고,
야한 CG 하나도 못 건진 거죠.
무슨 이딴 엿보기 게임이 다 있답니까?


사실 목욕탕 장면은 4일인가 5일째부터 찍을 수 있습니다.
처음부터 찍히지 않는 이유는 모르겠네요.
이런 장면이 초반부터 있어야 게임을 할 의욕이 생기지 않을까요?

게다가 다음날 카메라를 회수하러 가면 맨션 안으로 들어갈 수가 없습니다.
주인공이 또 누가 있을까봐 겁난답니다.
어제 두 사람이 몇 시에 출근하는지 다 확인했는데
오늘이라고 다르겠습니까?

어쩌면 전날 목욕 안 하고 잤으니까 
감기 걸려 쉬는 사람도 있을 거라고 생각하는 걸까요?
그럴 확률이 얼마나 되겠습니까?
장사도구를 다 맨션 안에 놓고 왔는데 그 정도 위험은 감수해야죠.

미에코의 집에 들어가기 위해서는 반드시 당일날 아침에 
두 사람의 외출을 확인해야 합니다.
매일 들어가려면 매일 아침마다 확인해야만 하는 거에요.
주인공이 진짜 프로가 맞는 걸까 의심이 듭니다.



자택에 도청기나 카메라를 설치하는 것도
제가 확인한 범위내에서는 아무 쓸모가 없었습니다.
그냥 은행에서 대화하는 거 엿듣고, 술집에서 대화하는걸 엿듣는 게 더 힌트가 됐죠.
도청기로 엿들은 게 아니라 그냥 옆에 앉아서 들었어요.



고생고생하며 레이코의 H씬을 촬영하는 데 성공했습니다.
그 후, 마감날 12시에 두목에게 촬영에 성공했다는 보고를 합니다.
이 고생을 했는데 두목은 칭찬 한 마디 없죠.
생업 포기하고 다른 일을 찾고 싶어집니다.


가장 눈에 띄는 건 어려운 난이도입니다만 나름 장점도 있는 게임이긴 합니다.
특히 카메라를 어느 위치에 설치하는지도 포인트 클릭을 통해 선택할 수 있는데
이후의 게임들은 하지 않았던 시도였죠.
그다지 대단하지는 않았지만 H씬은 애니메이션으로 되어 있고,
보이스도 들어 있어 나름 신경쓴 분위기도 납니다.



총평하자면, 개인적으로는 이런 장르의 게임을 좋아합니다.
이 게임도 고생을 좀 하기는 했지만, 재미가 아예 없지는 않았습니다.
참고할 만한 게임이 거의 없었던 시절의 작품임에도
장르의 정석이 상당히 많이 담겨있습니다.
눈여겨 볼 부분이 틀림없이 있어요.

하지만, 제 리뷰는 여기까지입니다.
스포일러하기 싫은 게 아니라, 더 이상 플레이하기가 너무나 힘들어요.
들은 얘기에 의하면, 제작사에서도 난이도 문제를 인지하고 있었고
게임을 판매할 때 공략법이 담긴 비디오를 함께 배포했다고 합니다.
차라리 게임을 더 쉽게 만들어 줬으면 훨씬 좋았겠네요.

댓글 2개:

  1. 하급생 시리즈, YU-NO와 유작 시리즈 언제 리뷰하나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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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2. Unknown//

    https://backpure.blogspot.com/2020/12/2021.html

    해당 리뷰들은 제 계획을 크게 틀어버리기 때문에 당장 리뷰하기 힘들 것 같습니다.
    내년 3월은 되어야 리뷰가 가능할 것 같네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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