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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8년 12월 9일 일요일

리뷰 : XENON ~몽환의 지체~(1994/12/9, 시즈웨어)

  * 이 리뷰는 치명적인 스포일러를 포함하고 있습니다.



<XENON ~몽환의 지체~>입니다.
<Desire ~배덕의 나선~>, <EVE ~burst error~>와 더불어 높이 평가하는 사람이
많았던 것으로 기억하는데 제 착각이었던 것 같습니다.
지금 찾아보니 옹호하는 사람이 많지 않았습니다.

이 게임은 주요 특징은 선택지에 따라 엔딩이 달라지는
멀티 엔딩 방식이라는 점입니다.
또한 엔딩 하나를 보면 새로운 엔딩이 생기는 방식을 택하고 있습니다.

문제는 이 시스템이 생겨난 이유입니다.
칸노 히로유키는 <Desire ~배덕의 나선~>에서 [마코토]편이
높으신 분들로 인해 에로 위주의 NTR 스토리가 된 것을 한탄했습니다.
그래서 다음 작품인 XENON은 멀티 엔딩으로 만들고
그 중 일부 엔딩을 에로하게 만들면 된다는 생각으로 이 게임을 제작한 것입니다.



의사와의 꿈 상담에서부터 게임이 시작됩니다.
주인공은 특수한 장소에서 어떤 여성과 만나는 꿈을 꾸었습니다.



꿈의 세계는 SF 배경인 것처럼 보여집니다.
꿈 장면이 다 지나간 이후에는 의사가 꿈에 대해서 질문합니다.
질문한 것을 제대로 대답하지 못하면 처음부터 다시 플레이해야 하는데,
질문이 너무 세세합니다.
장소가 어디였고, 문은 어땠고, 뭘 하려고 했고, 기온은 어땠고,
여자는 무슨 색 리본과 옷을 입고 있었고를 다 기억해야 합니다.


프롤로그의 꿈 장면 같은 건 대충 읽고 넘길 수도 있는 건데
철저하게 암기하듯이 해야 다음 장면으로 넘어갈 수 있습니다.
그렇다고 그런 질문사항들이 다음 장면에 꼭 필요하지도 않고요.
쓸데없이 불편합니다.


아무튼 이런 식으로 시작되는 스토리를 DREAM_1이라고 하는데
이걸 클리어하지 못하면 다른 엔딩을 볼 수 없습니다.



DREAM_1의 스토리는 괜찮은 편인데 SF 배경의 꿈과 병원 배경의 현실을 오가며
주인공의 기억 혼란, 주인공의 정체 등
미스테리한 스토리가 나름 재미있습니다.
단점이 있다면 너무 짧다는 점인데 어차피 엔딩1일 뿐이니
다른 엔딩들을 기대하게 합니다.



문제는 다른 모든 엔딩들이 기대에 못 미친다는 점입니다.
애초에 설정조차 DREAM_1과 같지 않습니다.
같은 캐릭터들이 전혀 다른 배역으로 등장합니다.

미스테리한 분위기의 DREAM_1과 달리
DREAM_2와 DREAM_3은 패러렐 월드 개념으로 단순한 에로 코미디입니다.

막무가내의 우주 해적과 병원 생활을 하던 평범인의 영혼이 뒤바뀌어 버립니다.
평범인이 된 우주 해적의 스토리가 DREAM_2,
우주해적이 된 평범인의 스토리가 DREAM_3입니다.



그냥 마구잡이로 깽판치고 다니다 보면 하렘 엔딩이 되는
개연성이라고는 없는 스토리입니다.

그리고 마지막으로 DREAM_∞이라는 스토리가 있는데
별 내용없이 H씬만 실컷 보여주는 스토리입니다.


XENON의 가장 큰 문제점은 가장 쓸만한 스토리인 DREAM_1이
제일 처음에 나오고, 가장 분량이 적다는 점입니다.
멀티 엔딩 게임에서 처음 보는 엔딩이 기대치를 크게 올려 놓고,
나머지 엔딩들은 실망시키는 역할만 하면 어쩌자는 거죠?

루트에 따라서 캐릭터가 맡은 역할과 설정이 달라지는 게임은
XENON 이외에도 많이 있습니다.
<카마이타치의 밤>이나 <몽환포영>같은 경우도
개그성 스토리가 일부 있었죠.

하지만, 그건 메인 스토리가 탄탄하고, 분량도 많은 상태에서
유머러스한 쉬어가기 엔딩을 조금 넣어놓은 정도였죠.
XENON은 메인 스토리가 곁다리로 보일 정도로 분량이 적습니다.


애초에, 기획 자체가 잘못됐다고 봅니다.
멀티 엔딩으로 만들어서 일부 엔딩은 시리어스하게 만들고,
일부 엔딩은 에로 코미디로 만들겠다는 어설픈 타협이
이도저도 아닌 게임으로 만든 거죠.



총평하자면, 이도저도 아닌 게임들을 보면 윗선의 개입이 느껴질 때가 있습니다.
XENON은 그런 느낌이 꽤 심하게 드는 게임이었습니다.

이 게임이나 <Desire ~배덕의 나선~>이나
칸노 히로유키의 생각대로 만들었다면 더 좋은 게임이 됐을 거라고 생각합니다.
칸노 히로유키가 하고 싶은 거 다 하면 어떤 참사가 벌어지는가는
2000년대의 아벨 소프트웨어가 보여줬지만,
그래도 XENON처럼 아쉬운 것보다는 나은 것 같아요.

댓글 2개:

  1. 이 게임 그래도 저는 기억에 오래 남았어요
    꿈과 현실이라는 매력적인 스토리였고
    무엇보다 사운드가 너무 좋았어요
    유노때도 그렇지만 우메모토류 음악은 대단하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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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2. Roro //

    꿈과 현실을 오가는 스토리는 난잡해지거나 허무해질 우려가 있는 소재인데
    DREAM_1은 그 소재를 잘 살린 스토리라는 생각이 듭니다.
    당시의 칸노 히로유키는 새로운 시도를 많이 해보려고 했죠.

    다만, 초반의 뛰어난 스토리가 중후반부에는 보이지 않아서 아쉬웠습니다.
    차라리 DREAM_1이 후반부에 배치되어 있었다면 더 높이 평가하지 않았을까 생각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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